[이혜정의 교육과 세상] 커지는 교육 격차 '무상 시리즈'로 못 줄인다

입력 2021-09-29 17:28
수정 2021-09-30 00:15
주요 대선 주자들의 공약 중 눈에 띄는 교육 공약이 없다. 지난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상교육,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무상돌봄 확대 등은 교육 정책이 아니라 복지 정책이다. 막대한 예산 집행에 비해 양극화 감소 효과가 거의 없다. 경제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가장 큰 원인이 공교육의 학비와 급식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교육비를 무상으로 하면 모를까 공교육에서 이 같은 무상 시리즈는 교육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전환기에 교육 공약은 복지 확대 수준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시대적 역량’을 어떻게 기를 것인지에 대한 정책이어야 한다. 미래 교육 비전을 제시하고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 교육과정과 평가 혁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기존 수능 정시 확대 주장은 표를 얻기 위해 미래 대비에는 눈을 감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교육 분야는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경우가 허다해서 공약 자체가 별 의미 없다는 자조도 적지 않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 6월 기준 문재인 정부 4년간 교육 공약 이행률은 9.3%였다. 교육보다 정치를 택한 정책, 무책임하고 발목 잡는 제도, 우왕좌왕한 코로나 사태 대처, 오락가락한 대입 방향 등으로 교육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각종 여론조사도 경제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고리가 더욱 악화됐음을 보여준다. 교육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우선 인공지능(AI) 튜터로 학생 개별 지도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교육의 질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인프라는 기본이다. 현재 전국의 학생들에게 1인 1교과서는 기본으로 제공되지만 1인 1디지털 기기는 제공되지 않는다. AI로 개별 학생의 학습 경로를 추적하고 그에 맞는 과제와 피드백을 제공하려면 공교육에서 1인 1태블릿(노트북)이 주어져야 한다. 4명당 1대의 태블릿으로 공부하라는 것은 4인 가족이 스마트폰 하나를 같이 사용하라는 격이다. 각자 학습 속도가 다른 학생들에게 AI 튜터가 각기 다른 진도로 학력을 다져주는 과정이 특정 사교육 플랫폼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가장 선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무상교육이나 시설 개선보다 교육 격차를 줄이는 효과가 훨씬 더 크다.

학생들 스스로가 깨어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상당수의 일반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절반 이상 엎드려 자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해외 학자들조차 왜 한국의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을 깨우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남의 생각을 집어넣는 수업’을 넘어 ‘내 생각을 꺼내는 수업’을 하니 자는 학생들이 급감했다. 제주 표선고는 면지역의 낙후된 공립학교다. 비평준화 지역인데 늘 정원 미달이었다. 전교생 대다수가 중하위권으로 수업시간에 3분의 2 이상이 엎드려 잤다. 이런 학교에 우수 국제학교에서 운영되는 국제바칼로레아(IB)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성적이 높든 낮든 전교생이 토론·프로젝트·논서술 평가 중심의 IB 수업을 받는 것이다. 올해 첫 신입생이 입학했는데 IB의 본격 시작은 내년부터임에도 벌써 변화가 시작됐다.

중하위권이 대다수라 으레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많으려니 했는데 되려 재미있는 과목이 수학이라는 학생이 많았다. 고1 학생들의 지난 학기 수학 기말과제를 보니 “이차함수를 활용해 운동장 잔디밭 스프링클러 배치를 개선할 수 있나”, “방정식을 통해 음료마다 가장 효율적인 얼음 모양을 알 수 있나”, “드론을 이용해 농약을 살포할 때 가장 효율적인 높이는 무엇인가” 등의 주제로 A4 10여 쪽의 보고서를 썼다. 기존의 반복적 문제풀이와는 매우 다른 공부다. 전교생이 전 과목에서 자신만의 주제를 찾아 탐구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3분의 2가 엎드려 자던 학교였는데 수업이 바뀌자 자는 아이들이 사라졌다.

생각을 꺼내는 교육으로 아이들을 깨우는 교육이 대구에서도 이미 71개 학교에서 시동을 걸었다. 선발 효과나 학군 효과가 없어도 교사와 교육 프로그램이 우수하면 하위권 학생도 성장한다. 교육 격차는 시대적 역량을 제대로 기를 수 있게 공교육을 최상의 질로 끌어올려야만 비로소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