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보석보다 돈 된다…'한 병에 22억' 요즘 뜨는 투자 상품 [김동욱의 하이컬처]

입력 2021-09-29 11:54
수정 2021-09-29 13:40

고급 위스키를 향한 글로벌 경매 시장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회화나 조각, 골동품, 시계, 귀금속이 아닌 희귀 싱글몰트 위스키가 수집과 투자의 대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희귀 고급 위스키 수요가 늘면서 일부 갑부의 SNS에는 "지금 내 손에는 페라리 4대가 들려있어. 1926년산 희귀 맥캘란이…"라는 문구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트뉴스에 따르면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 글로벌 대형 경매업체의 거래 대상 품목 중 '명품 위스키'가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위스키는 주류 거래 중에서도 와인이나 코냑에 비해 위상이 높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색 맞추기 식으로 취급된 경향이 강했다는 것인데요.

하지만 글로벌 주류 시장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과 아일랜드, 일본, 대만의 수집가들이 고가에도 불구하고 희귀 위스키에 선뜻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는 설명입니다

1970년대부터 주요 주류를 경매 대상에 올린 소더비의 Sotheby's Wine & Spirits 부서에서도 주력은 와인이었고 위스키가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7년 홍콩 경매에서 중국 바이주인 마오타이와 희귀 스카치위스키 거래가 늘면서 비중이 6%까지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위스키 경매를 확대해나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2018년 소더비 홍콩 경매에서 희귀 맥캘란 위스키 한 병이 150만달러(약 17억8000만원)를 기록하며 시장 관계자들의 눈을 휘둥그레지도록 만들었습니다. 2019년에는 '얼티미트 위스키 컬렉션'이라는 위스키 전용 경매가 진행돼 총 경매금액이 985만달러(약 116억원)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1926년산 맥캘란 위스키 한 병이 역대 최고가인 190만달러(약 22억50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그해 Sotheby's Wine & Spirits사업에서 위스키가 차지하는 비중이 13%로 높아졌고, 2020년에는 19%로 껑충 뛰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시장이 빠르게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2019년 서울옥션에서 ‘맥캘란 72년 제네시스 디캔터’ 한 병이 1억55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1960~197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경매를 산발적으로 진행했던 크리스티 역시 위스키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위스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예전에 500달러에 산 위스키가 1만달러가 된 것을 알게 된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위스키 시장으로 달려들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싼값에 사들였던 위스키가 돈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위스키 가격이 뛰면서 주요 위스키 제조업체들도 유명 화가, 디자이너 등과 협업해 명품 위스키를 담은 병을 새로 선보이는 등 시장의 반응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다양한 품목들이 투자 대상으로 목록에 오르면서 깜짝 놀랄 가격을 선보이는 일이 낯설지 않아 졌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도 위스키 수집가가 없지 않았겠지만, 오늘날의 위스키 투자자와는 특성이 다를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즐기기 위한 대상으로서 위스키가 아닌, 투자 대상으로서 위스키는 더는 같은 술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