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2019~2020년 2.5~2.6%로 추정했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최근 2.2%로 낮췄다. 올해와 내년은 2.0%로 더 낮아질 것으로 봤다. 2001~2005년(5.1%)부터 5년에 1%포인트씩 떨어져 2016~2020년 2.6%로 내려온 잠재성장률이 이제 1%대 추락을 목전에 둔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경제체력’이 고갈됐고, 상승 반전시키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20세기 이전 강력한 자본 축적을 바탕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는 물론 전후 독일,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에 이르는 후발국들의 성장률 추이(곡선)도 고도성장을 마친 뒤엔 마치 오른쪽 끝에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천천히 하락하며 긴 꼬리를 그렸다. 성장률의 지속적 하락은 과연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일까. 성장보다 구조 혁신하는 中여기서 중국 2위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의 유동성 위기와 코로나 사태 속 선진국들의 노동생산성 향상 소식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부문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9%를 점하고 있어 중국 정부도 헝다를 파산 쪽으로 몰고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두고두고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란 점은 중국 정부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부동산 개발에 기댄 성장전략을 수정할 경우 6%가 마지노선인 성장률 목표를 4%대로 내려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산업구조를 하루빨리 첨단제조기술과 그린테크 등으로 개조하려는 중국 정부 의지는 강해 보인다. 어느 정도 성장률 하락은 감내할 것 같은 태세다. 시진핑의 ‘공동부유(共同富裕)’ 주창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한국은 성장률 하락세를 늦추는 데 급급한 데 비해 중국은 이를 적극 ‘제어’하려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중국만이 아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선진 각국은 생산성 측면에서 새 전기를 맞고 있다. 요소(노동·자본) 투입량 이상으로 중요한 성장변수인 총요소생산성, 특히 노동생산성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의 노동시간당 GDP 증가율은 2019년 4분기 이후 3년간 6.7%(직전 3년간 3.3%)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됐다. 영국(0.6%→3.7%), 독일(1.1%→2.6%), 일본(마이너스→2%) 등 다른 선진 7개국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사태로 생산성 낮은 근로자들이 퇴출되고, 디지털화·자동화가 가속되며, 재택근무가 확산된 점 등이 예상치 않은 효과를 낳은 것이다. 생산성 향상, 손 놓을 때 아냐문제는 한국이 이 대열에서 빠져 있다는 점이다. 내년까지 3년간 한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4.6%로 높은 편이지만, 직전 3개년에 비해선 오히려 하락했다. 코로나19 같은 충격파를 흡수하며 생산성을 외려 끌어올리는 시스템의 유연성에서 한국이 선진 경제권을 한참 못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한번 정규직으로 진입하면 생산성을 불문하고 과보호되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대표적 원인일 텐데, 이를 손보려는 시도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인적 자본 투자가 생산성을 좌우한다면서도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도록 교육개혁에 힘쓰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현 정부의 교육당국은 대입 정시 비중을 늘리고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고 자사고 폐지에만 올인한 것 외에 무엇을 했나 싶다.
총요소생산성의 성장 기여도는 아직 선진국 수준(잠재성장률의 1.3%포인트)을 밑돌고 있다. 단기적으론 국내 투자환경 개선에 집중해 자본투입량 증대를 꾀하면서도 총요소생산성의 상승 반전을 위한 경제 제도·규범의 선진화와 규제완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아직 잠재성장률 하락을 당연시하고 무덤덤해 할 때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