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새로 생긴 와인 가게들이 즐비한 삼각지 대로를 지나다 보면 새삼 우리나라의 ‘와인 열풍’을 실감하곤 한다. 코로나 장기화로 ‘홈술’, ‘혼술’ 문화가 자리를 잡은 까닭인지 와인 판매도 어느새 대중화 단계로 접어든 모양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3억3000만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와인병(750mL)으로는 5400만L, 약 7300만 병에 해당한다.
1년에 7300만 병이라니… 가게 앞에 일렬로 늘어선 오묘한 빛깔의 와인병을 보니 ‘저 병들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실제 소주나 맥주류는 재활용률이 90%가 넘지만 와인은 병의 특성상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와인을 담는 유리병은 산화 변질을 막기 위해 직사광선이 투과되지 않도록 다소 어두운 색상을 사용한다. 이런 색상 문제로 가뜩이나 재활용하기가 쉽지 않은데, 최근 기업 간 디자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형형색색의 와인병이 등장해 재활용은 더욱 어려워졌다.
환경부는 2019년도에 와인병에 ‘재활용 용이성 등급 어려움’을 표시하도록 했으나 당시 업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결국 환경부는 추가 행정예고를 통해 와인 수입 및 생산 업체가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분담금을 20% 추가 부담하는 대신 병에 재활용 등급을 표기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와인병의 대체재가 없는 상황에서 업체에 지나친 피해가 가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와인 수요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재활용이 잘되는 대체재를 개발하고 불필요한 포장재를 최소화하는 것이 기업으로서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업체가 내는 분담금이 재활용을 위한 정책 도입 등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분담금과 같은 페널티를 늘리기보다는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재활용 정보를 보장하고, 재활용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기업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와인병이 제대로 재활용되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가장 손해를 보게 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소비자다. 환경이 나빠지면 기후변화로 인해 더 이상 포도를 키우기 어려운 지역이 생기고 결국 균형감 있는 양질의 와인을 생산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위대한 와인은 포도원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듯이 환경 기후조건이 좋아야 소비자도 비교적 좋은 가격에 좋은 와인을 맛볼 수 있다.
‘필(必)환경시대’의 재활용 문제는 특정 소비자만의 숙제가 아닌 전 세계인에게 주어진,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다. 이는 패러다임의 변화이자, 지구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가 ‘지구를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역할만 강조하기 이전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재활용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