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美 임상 2상 앞둔 에이비온 "항암 플랫폼도 구축"

입력 2021-09-28 13:56
수정 2021-10-01 07:10


폐암은 여러 암종 중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질환이다. 지난해 국내에서만 1만8000여명이 폐암으로 숨졌다. 암세포의 크기에 따라 소세포폐암, 비소세포폐암으로 나뉘는데 비소세소폐암 환자가 80% 이상이다. 이 비소세포폐암에서 나오는 연간 세계 신규 환자만 170만명에 달한다. 비소세포폐암을 정복하면 인류를 괴롭히는 대표 암종 하나를 처리하게 되는 셈이다.

에이비온은 기존 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ABN401'의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동반진단 기술을 적용해 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환자들을 선별하는 등 임상을 치밀하게 설계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신영기 에이비온 대표는 “연내 ABN401의 미국 임상 2상을 시작하겠다”며 “인터페론베타 기반 항바이러스제도 항체를 부착해 플랫폼 기술로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약 잘 들을 환자 선별해 임상 성공률 높인다”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변이는 비소세포폐암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발병 사례의 30%를 차지한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와 이레사, 스위스 로슈의 타쎄바 등 현재 판매 중인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도 EGFR의 세포 내 신호전달을 차단하는 저해제다.

문제는 내성이다. 타그리소 이레사 등 기존 치료제를 사용한 환자의 상당수에서 간세포 성장인자 수용체(C-Met) 유전자의 변이가 발생하면서 EGFR 저해제가 듣지 않게 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C-Met 변이가 비소세포폐암 발병 원인 중 6%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에이비온은 C-Met 저해제로 개발 중인 ‘ABN401’의 호주·한국 임상 1상 중간 결과를 이달 중순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공개했다. 비소세포폐암에서 종양 크기가 50% 이상 줄어든 부분관해(PR)가 2건 확인됐다. 신 대표는 “기존 항암제로 치료했다가 암이 재발한 환자를 대상으로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며 “임상 2상에서 투약할 용량인 800mg 이상에서도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에이비온은 연내 미국 임상 2상 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미 지난 1월 ‘심리스 방식’으로 임상 1·2상 시험계획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 받은 바 있다. 심리스 임상은 1상, 2상을 별개로 진행하는 전통적인 임상 방식과 달리 하나의 프로토콜로 중단 없이 계속 임상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회사는 EGFR 저해제에 내성이 있는 환자 중 C-Met 유전자의 엑손14 부위에서 결손(skipping)이 일어난 환자를 대상으로 약효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임상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동반진단을 적용했다. 환자별 변이된 C-Met 유전자의 복제(카피) 횟수를 확인한 뒤 일정 범위에 해당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약효를 검증한다. 특정 유전자의 발현 여부를 바이오마커 삼아 신약 개발에 성공한 사례는 있지만 유전자 복제 횟수의 범위값까지 고려할 정도로 세밀하게 임상을 설계해 신약을 내놓은 사례는 아직 없다는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신 대표는 “액체생검을 적용해 조직검사가 어려운 비소세포폐암 환자들까지 임상 적용 범위를 넓혔다”며 “신약 후보물질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동반진단을 적용해 약이 잘 들을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를 추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에이비온은 유방암, 난소암 등에서 많이 발현하는 클라우딘3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은 ‘ABN501’도 개발 중이다.

"장기 전략 책임질 항암 플랫폼도 준비"
‘인터페론베타’는 에이비온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무기다. 인터페론베타는 활성도가 높아 항바이러스제로 효과가 뛰어나지만 그간 상용화가 쉽지 않았다. 생산 과정에서 인터페론베타 단백질이 서로 엉겨붙고 열에 약하다는 문제가 있어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이비온은 배양 공정과 정제공정에서 수율을 끌어올려 80배까지 생산성을 늘렸다.

신 대표는 “친수성을 높여 약물의 안정성을 향상시켰다”며 “약동학적 여건들도 개선해 기존 인터페론베타 대비 더 적은 양으로도 체내에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인터페론베타 파이프라인인 ‘ABN101’은 전임상용 시료 생산이 끝났다. 임상 시료 생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맡기로 했다. 다발성경화증, 코로나19 등의 치료제로 ABN101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인터페론베타를 여러 암종에 대응할 수 이는 항암 플랫폼으로도 개발하고 있다. 인터페론베타는 약효가 뛰어나지만 그 반대급부로 독성이 강하다. 이 인터페론베타에 암 조직을 겨냥하는 항체를 붙이면 항체약물접합체(ADC)보다 활용도가 높은 항암 플랫폼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게 신 대표의 생각이다. 신 대표는 “인터페론베타는 면역세포의 MHC1를 자극해 면역반응을 활성화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며 “면역항암제와 병용투여 하는 방식으로 개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이비온의 또 다른 강점은 장기 성장 전략과 단기 매출확보 전략 사이에서 파이프라인의 균형을 잘 맞췄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론 인터페론베타 기반으로 항암 플랫폼을 개발해 큰 성과를 노린다면, 중기적으론 ABN401, ABN501 등의 항암 신약 후보물질과 ABN101로 기술이전 등의 성과를 도모한다.

단기적으론 국방과학연구소 연구과제 수주에 성공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마련했다. 에이비온은 이 과제에 따라 생화학 테러 등 생물재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감염병 치료제를 개발하며 지난해 20억원가량의 용역매출을 냈다. 신 대표는 “ABN401의 임상 2상 진척과 함께 기술이전을 위한 논의들을 계속 진행하면서 연구개발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