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내년까지 지속하고 그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강도 높은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해 나가기로 했다. 다음달 발표될 가계부채 대책은 차주 상환능력평가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2023년 7월 이후까지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앞당겨 시행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총량규제 올해 6%→내년 4% 목표”고승범 금융위원장(사진)은 27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경제·금융시장 전문가 간담회에서 “(가계부채) 총량 관리의 시계를 내년 이후까지 확장하고 대책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강도 높은 조치들을 지속적, 단계적으로 시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금융위는 금융권 가계대출에 대해 잔액 기준으로 연간 증가율 5~6% 선에서 묶는 총량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내년 이후엔 연평균 4% 이내에서 관리하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목표다. 올 하반기부터 대출 규제가 크게 강화되면서 목표치를 초과한 일부 은행에서 신규 대출이 중단되는 등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8월 기준 가계대출 증가율이 전년 동월 대비 9.5%에 달해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위는 다음달 발표할 추가 대책에서 대출 심사 때 상환능력평가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고 위원장은 “상환능력을 초과하는 대출을 받아 변동성이 큰 자산에 무리하게 투자하는 것은 자칫 ‘밀물이 들어오는데 갯벌로 들어가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대출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본인이 대출을 감당하고 안정적으로 상환할 수 있느냐가 돼야 할 것”이라며 “다음달 초나 중순께 발표할 가계부채 추가 대책도 상환능력평가 실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환능력평가의 핵심 수단으로는 DSR 규제의 조기 확대가 유력하다. 금융위는 올 7월부터 전체 규제지역에서 6억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주택담보대출을 받거나 연소득과 관계없이 총 1억원을 초과한 신용대출을 받을 때 차주 단위 DSR 40%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즉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지 않도록 그만큼 대출 한도를 축소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DSR 규제를 내년 7월부터 적용 대상을 총대출액 2억원 초과 차주로 확대하고, 2023년 7월 이후엔 1억원 초과 차주까지 전면 시행할 계획이었다.
고 위원장은 간담회 직후 취재진과 만나 “(상환능력평가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방안이) DSR과 관련한 내용일 수 있다”면서도 “앞으로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대출이 이뤄지는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각종 제도적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전세대출 규제 강화는 고민”고 위원장은 대출 규제를 전세자금대출까지 확대하는 것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전세자금대출은 실수요와 연결된 측면도 있고 (대출 금리나 한도 등) 여러 조건이 좋다 보니 (투기적 수요까지 겹쳐) 많이 늘어나고 있어 종합적으로 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고 위원장과 비슷한 시각을 드러냈다. 김영일 나이스평가정보 리서치센터장은 “8월 현재 전세대출 잔액은 전년 동기 대비 22.3% 급증해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하고 있다”며 “전셋값이 급등한 게 주된 원인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임차인의 레버리지 확대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어 정교한 규제 설계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이에 대해 “국민은행이 최근 전세 갱신 시 보증금 대출 한도를 실제 증액분으로 제한한 건 상당히 고무적인 사례”라며 “다른 은행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 위원장은 증권사 신용융자의 축소 가능성도 언급했다. 고 위원장은 “증권사가 관리를 잘하겠다고 했다”면서도 “동향을 봐가며 필요하면 추가 보완대책을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