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앓고 있었더라도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던 중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다면 사망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A씨의 남편 B씨는 30년간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다 2014년 전역한 뒤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일용직 노동일을 하며 생활했다. B씨는 2017년 3월에 공공근로사업인 ‘소나무재선충병 예방 나무주사 사업’에 참여했는데 작업 첫 날 점심식사 후 작업장으로 이동하다가 쓰러져 사망했다.
A씨는 “남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급여·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측이 “사망 원인은 B씨가 이전부터 앓아온 심혈관 질환 악화”라며 지급을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씨에게 고혈압 등 질환이 있었지만 2016년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정상 경계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받을 만큼 관리를 잘 해왔디”며 “사망 당일 B씨의 업무가 신체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판단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주로 고령층이 하는 공공근로사업 특성상 업무가 과중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B씨가 처음 해보는 업무가 아니었던 점 등에 비춰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헸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B씨가 사고 당일 약 9㎏ 무게의 예초기 엔진을 메고 산지를 이동하며 일을 했고, 점심 식사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하면 사망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추운 날씨에 실외에서 과도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망인의 기존 질병 등이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해 급성 심근경색으로 발현됐다”며 “원심 판단에는 업무상 재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