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형 과학기술을 선도형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개혁에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앞장서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율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 몰입 환경을 구축해 출연연의 활기를 되찾아주는 자기 혁신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출연연의 개혁이 지체된 정확한 이유를 밝혀내고, 공공과학기술을 스스로 혁신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대덕클럽 등 6개 과학기술 관련 단체가 뭉친 ‘공공과학기술혁신협의회’의 절박한 목소리다.
과학기술이 국정에서 완전히 밀려나 버린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를 세계 10위로 키워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실종돼 버렸다.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개발한 성과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해 줄 과학기술 정책은 연구 현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선무당들에게 포획당해 버렸다. 자칫하면 우리가 피와 땀으로 이룩해 놓은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릴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지난 4년 동안의 맹목적인 탈원전·탈석탄으로 에너지 정책이 참혹하게 해체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안전성을 확보한 우리의 원전과 석탄화력 기술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수소·태양광·풍력을 정상적으로 육성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천연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지리적 여건을 무시한 무차별적인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애써 가꿔 놓은 환경이 망가지고 있다. 심지어 인류의 미래를 위해 국제 사회가 강력하게 요구하는 ‘탄소중립’도 훼손시켜버렸다. 탄소중립은 탈원전·탈석탄을 대못질하고, 기초지방자치단체까지 선동 조직화하는 정치적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과학과 진실’을 앞세워 글로벌 리더의 지위를 되찾겠다고 분주한 미국처럼 대선에 희망을 걸기도 어렵다. 여당의 예비후보들은 하나같이 탈원전·탈석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야당의 사정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일부 야당 예비후보의 탈원전 반대 목소리에서는 진정성과 절박함을 찾기 어렵다. 우리 과학기술의 안타까운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국가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예비후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과학기술계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제 퍼주기 식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버린 정치판이나 영혼을 잃어버린 관료 사회에 대한 기대는 온전하게 접을 수밖에 없다. 문민정부(김영삼 정부) 이후에 급격히 자신들의 세력만 키워온 선무당급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부총리 부서로 승격시키고, 청와대에 과학실장을 신설한다고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도 없다. 정치권이 과학기술계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고, 국민들이 과학기술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은 낯선 제도와 개혁이 아니라 연구실에서의 노력으로 발전한다는 명백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과제중심예산제도(PBS)처럼 우리 몸에 맞지 않는 다른 나라의 낯선 연구관리 제도의 무차별적 도입과 섣부른 개혁의 반복이 출연연을 무력화한 주범이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선도형 과학기술을 만들겠다고 외치면서 돌아서서는 다른 나라의 제도와 화려한 구호를 흉내내는 엉터리 개혁도 확실하게 거부해야 한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과학기술로 거듭나야 한다. 정치판과 관료 사회가 인정하는 과학기술이 아니라 국민이 믿고 신뢰하는 과학기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과학기술에서 ‘자율’과 ‘혁신’은 공허한 그림의 떡일 뿐이다.
과학기술계의 고질적인 분야별 칸막이를 확실하게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분야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우리의 사회적 환경에 맞는 제도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도 필요하다. 연구윤리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연구실은 제쳐두고 정치판이나 기웃거리는 선무당들이 과학기술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리더십은 악취가 진동하는 어두운 대선 캠프가 아니라 연구원들의 노력이 빛을 내는 연구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