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플라스틱 소재 가격이 치솟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나선 기업들이 앞다퉈 재생 플라스틱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긴 일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재생 플라스틱 수요 강세 현상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생 플라스틱 산업이 급팽창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소재 가격 사상 최고가 경신26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달 압축 페트(PET) 가격은 ㎏당 319원으로 환경부가 재생 플라스틱 소재 가격을 집계한 이후 가장 높았다. 지난해 8월(207원)과 비교하면 54% 치솟았다. 압축 PET는 가장 많이 쓰이는 재생 플라스틱 소재다. 플라스틱 생수병 등을 압축해 얻을 수 있다.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을 세척해 분쇄한 플레이크 가격도 상승세다. 작년 8월 ㎏당 467원이었던 PE 플레이크 가격은 지난달 548원으로 17% 올랐다. PP 플레이크 가격도 같은 기간 ㎏당 424원에서 493원으로 16% 뛰었다. 이들 소재는 최근까지 거의 재활용되지 않았지만 플라스틱 재생 기술 발전에 힘입어 조금씩 수요가 늘고 있다.
재생 플라스틱 소재 가격이 오른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글로벌 PET 플레이크 가격은 지난 6월 새 PET 가격을 앞지른 데 이어 지난달 t당 1435유로까지 치솟았다.
재생 제품에 꽂힌 電·車 기업들재생 플라스틱은 주로 높은 내구성을 요구하지 않는 제품의 외장재로 활용된다. 특히 자동차와 전자 업종이 재생 플라스틱 활용에 적극적이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한 대엔 500mL 생수병 32개 분량의 재생 플라스틱이 들어간다. 플라스틱을 재가공한 직물이 시트와 팔걸이를 감싸는 데 쓰인다. LG전자는 올해부터 텔레비전과 사운드바에 사용하는 플라스틱 원료의 약 30%를 폐자동차 전조등과 폐가전제품 등을 재활용해 만든 재생원료로 대체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폐가전으로 플라스틱 펠릿을 재생산해 냉장고와 세탁기 부품에 쓰고 있다. 사이니지(전광판)와 모니터 뒷면 커버 등도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재생 플라스틱은 폐플라스틱을 잘게 잘라 압출하거나(기계적 재생) 고온으로 녹이고(열분해) 화학적으로 분해(해중합)하는 방식으로 제조한다. 지금까지는 일본 등에서 깨끗한 플라스틱을 수입해온 뒤 기계적 재생을 통해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플라스틱엔 한계가 있다. 불순물이 없는 플라스틱만 재활용할 수 있고 품질도 새 제품보다 떨어진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폐플라스틱을 분자 단위로 쪼개 재활용하는 열분해와 해중합 방식이 부상했다. PET 소재만 가능한 해중합은 주로 플라스틱병 재활용에 쓰인다. 열분해 방식을 쓰면 버려진 PE, PP 등도 다시 활용할 수 있다. 재생 플라스틱은 ‘도시유전’석유화학업계는 앞다퉈 재생 플라스틱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재생 플라스틱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본 것이다. 오염된 페트병을 100% 재활용하는 해중합 기술로 유명한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은 지난 17일 울산을 세계 최대 ‘도시 유전’으로 조성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을 핵심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종혁 SK지오센트릭 비즈추진그룹 담당은 “조만간 재생 플라스틱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플라스틱을 여러 번 재활용해도 품질이 저하되지 않는 기술 개발 경쟁도 뜨겁다. 한화솔루션은 폐플라스틱을 녹인 열분해유에서 분자구조를 변화시켜 나프타를 생산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렇게 생산된 플라스틱은 반복 재활용해도 강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롯데케미칼은 오래되거나 오염된 페트병을 수차례 재활용해도 품질 저하가 없는 화학적 재활용 페트(C-rPET) 생산량을 2030년까지 연간 34만t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