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전 검찰총장)가 얽혀 있는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 수사에 전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공수처는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고 김웅 국민의힘 의원,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의 자택과 사무실 등에서 확보한 압수물에 대한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 공수처는 수사 3부(부장검사 최석규) 인력 전원과 다른 부서 검사까지 이 수사에 투입했다.
총선을 앞둔 지난해 4월 손준성 당시 대검 정책관이 국회의원 후보 신분이던 김 의원에게 여권 인사 고발을 사주했다는 게 이번 의혹의 핵심이다. 윤 전 총장은 손 검사에게 고발장 전달을 지시했다는 의심을 받아 공수처에 피의자로 입건됐다.
문제는 공수처가 이 사건에 집중하면서 다른 사건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공수처가 수사하고 있는 사건은 고발사주 의혹 사건을 포함해 총 10개다. 수사 3부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수사외압 의혹, 검찰의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의혹,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공소장 유출 사건 등에 대한 수사도 하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다.
공수처가 고발사주 의혹에 수사력을 집중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정치적 중립’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국민은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할 것”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대한 빨리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게 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공수처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상황에선 어떤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할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공수처는 조만간 손 검사 등에 대한 소환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손 검사와 김 의원 등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피의자로 입건된 윤 전 총장을 불러 조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포토라인에 선 대선주자’의 모습은 6개월 뒤 대선 당일까지 국민 뇌리에서 쉽사리 잊히지 않을 공산이 크다. 과거 검찰이 대선을 앞두고 유력 주자 수사에 신중을 기했던 이유다.
지금까지 공수처에 고발된 사건 수는 수천 건에 달한다. “주요 정치인을 수사해달라”며 공수처에 접수되는 고발장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더 빠르게 쌓여갈 것이란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혐의가 있든 없든 수사하는 게 책무”라는 공수처는 이 중 어떤 사건을 수사하기로 결정할지 궁금하다. 그때도 과연 정치적 중립을 수사의 취지로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