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투자한 포트폴리오가 잘 관리되고 있는지 질문을 자주 던지고 받습니다. 포트폴리오 회사가 잘 관리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은 회사의 실적이겠죠. 그렇다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잘 나오면 만사형통이고 그렇지 않으면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실적이 좋고 나쁨의 기준은 또 무엇일까요? 전년 대비 아니면 사업계획 대비? 그리고 실적이 목표나 계획 대비 얼마나 잘 나오면 좋은 것이고 얼마나 미달하면 안 좋은 것일까요? 10% 이상 초과 달성하면 안심해도 될까요? 15% 미달하면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면 20%일까요 30%일까요?
재무실적은 과거입니다. ERP(전사적자원관리)가 완벽하게 갖춰진 회사들이 아니고서는 보통 빨라도 익월 중순이나 늦으면 하순에 전월 결산 숫자를 보게 됩니다. 연말 결산은 최소한 두 달 이상 걸리죠. 따라서 재무 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한 두달 전에 벌어진 여러가지 일들이 복합적인 작용한 숫자일 뿐입니다.
물론 실적은 중요하고 과거는 미래를 예측하는데 필요한 인풋입니다. 그러나 실적만 보고 포트폴리오 상황을 평가하는 것은 의사가 체온, 혈압, 채혈만으로 건강에 이상이 있다 없다 의견을 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장 어떤 증상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몸의 어디선가 이상이 생기고 있을 수도 있고,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바꾸는 중에 일시적으로 몸에 이상 증상이 보일수도 있습니다. 경험 많고 유능한 의사가 정밀한 진단과 관찰을 통하여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 예방적인 조치나 처방을 내리는 것처럼 경험 많고 실력 있는 PE투자자는 재무 실적만으로 투자회사의 건강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바이아웃 투자의 경우 포트폴리오 회사가 잘 관리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정성적인 기준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i>얼라인먼트와 컨트롤</i>
1. 주주와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일치되어 있나?
PE 투자의 핵심 중의 핵심이 얼라인먼트(Alignment), 즉 이해관계 일치입니다. 얼라인먼트는 주주와 경영진과 직원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성공의 과실과 실패의 리스크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흔히 회사가 생각처럼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낄 때 문제의 원인을 조직의 역량이나 방법론에서 찾으려고 하기 쉬운데, 좀더 깊숙이 파고 들어가보면 주주와 경영진간의 이해관계 불일치에서 근본원인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PE에게 지분을 매각한 창업자들이 PE 투자 이후에도 계속 회사를 경영하는 경우 얼라인먼트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분 매각으로 이미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창업자들은 회사를 경영함에 있어서 투자자의 수익 극대화와 자신의 어젠다가 충돌할 경우 후자를 우선순위로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주가치를 위하여 절실하게 경영하기를 꺼리고 본인의 평판과 인간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어려운 결정을 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징후가 보인다면 그건 큰 위험신호입니다.
2. 주주가 회사를 실질적으로 컨트롤하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지분 51% 이상을 보유하거나 이사회 의석의 과반수를 가지면 대주주로서 회사의 경영권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한 대주주가 경영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특정 인물이 회사의 핵심 기술이나 핵심 고객과의 관계를 독점하거나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면 그 사람과 주주간에 분쟁이 생길 경우에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교체를 하자니 두렵고 그대로 두자니 회사가 망해가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회사에서는 PE사가 경영권을 매각한 창업자에게 계속 경영을 맡겼으나 얼마 후에 대주주인 PE사와 창업자간에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창업자는 회사를 싼 가격에 되살 목적으로 회사의 실적을 고의로 훼손하려는 시도까지 했습니다. PE사가 뒤늦게 이를 포착했지만 회사의 R&D와 영업을 창업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대주주는 CEO 교체의 리스크를 두려워한 나머지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결국 회사는 심하게 망가졌습니다. 펀드에 출자한 투자자와 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면 언제든지 핵심 경영진도 교체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일 그게 어렵다면 그 투자건은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i>정보의 흐름</i>
3. 회사로부터 받는 정보에 포만감을 느끼는가?
PE는 투자한 회사에서 충분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적이 좋아도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주주 입장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반면 회사의 실적이 저조해도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고 회사 사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업데이트가 되어 있다면 그다지 나쁜 상황은 아닙니다. 특히 투자 초기에는 회사의 조직에 대하여 포만감이 느껴질 때까지 충분히 정보를 습득해야 합니다. 그 시기를 놓칠 경우 조직 장악이 어려워집니다. 잘하는 PE사들은 투자 초기에 직원을 회사에 파견하여 상주하게 합니다. PE사 직원들이 회사의 여러 미팅에 참석해서 관찰을 하기도 하고 저녁에는 직원들과 소주 한잔을 하면서 그들의 고충을 직접 듣는 자리를 갖기도 합니다.
4. 회사 조직 내부에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이 있는가?
주주가 적시에 양질의 정보를 얻으려면 회사에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정치적인 각색, 자의적인 해석이나 여과 없이 들을 수 있고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신뢰와 믿음이 일방적일 수만은 없겠죠. 경영진 입장에서도 주주를 믿고 신뢰할 수 있어야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주주가 먼저 경영진에게 충분한 신뢰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투자한 회사에 내가 확실히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불안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i>경영진 구성과 커뮤니케이션</i>
5. 경영진 팀워크가 탄탄하고 조직이 안정되어 있나?
투자 이후에 경영진을 새로 셋업하는 경우 다수의 경영진이 외부에서 합류하게 됩니다. PE사의 역할은 신임 경영진 리크루팅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생면부지인 사람들이 어느날부터 한 곳에 모여서 같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당연히 서로 잘 지낼거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팀워크가 잘 구축되어 가는지를 살피고 챙겨야 합니다. 특히 투자 후 첫 1년간은 채용을 결정한 주주가 신경을 써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가면서 주주보다는 CEO를 중심으로 경영진이 단합해 나가는 체제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경영진들을 정기적으로 면담하면서 그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서로 어떤 역학관계가 형성되고 있는지 챙기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만일 포트폴리오 회사의 경영진들이 서로 불만이 심하거나 험담을 하는 상황이라면 그 회사는 머지 않아 실적이 망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6. 경영진과 일대일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인가?
이 세상에는 문제가 없는 회사는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문제는 늘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터졌을 때 주주와 경영진이 합심해서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느냐입니다. 평소에 서로 신뢰를 쌓아 놓았다면 긴급한 상황에서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대화를 해서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만일 투자한 회사의 경영진과 내가 솔직하게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면 그 포트폴리오 회사는 제대로 관리되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7. 경영진의 실수나 문제점에 대하여 솔직하게 피드백을 줄 수 있나?
주주는 경영진이 주주가 원하는 방향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실수를 하고 있다면 적시에 정확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PE사 직원들이 자신들보다 나이나 경험이 훨씬 더 많은 경영진들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준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잘못 전달했다가 관계가 나빠지면 어쩌나, 대안도 없는데 그만둔다고 하면 어쩌나, 버릇없다고 뒤에서 나를 욕하고 다니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망설이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경험과 요령 부족으로 피드백 전달 방식이 잘못되어서 큰 오해와 소란이 생기는 경우가 많고 결국 운용사에서 그 뒷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그냥 못 본 척 넘어가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포트폴리오 회사는 잘 관리되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i>방향성의 일치</i>
8.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주주의 생각과 부합하는가?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주주가 원하는 방향과 일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PE운용사는 명확한 투자 논거(Investment Thesis)를 가지고 투자해야 하고 투자 이후에는 투자 논거에 맞게 회사가 경영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투자사의 투자 논거들이 일반 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얘기해서는 되지 않고 경영진이 완전히 이해하고 체득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끔씩 경영진과 직원들의 간담회나 회식 자리에서 회사가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서 물어보고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체크해 봐야 합니다.
9. 회사의 리소스가 투자수익 창출에 가장 중요한 분야에 배분되어 있나?
회사의 인적, 재무적인 리소스가 투자 논거에 맞게 배분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기업가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곳에 회사의 큰 리소스가 투입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는데 그 근본원인 중 하나가 주주와 경영진간의 얼라인먼트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국내에는 기업가치 성장에 대한 업사이드를 경영진과 공유하지 않는 PE운용사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공기업 성격이거나 큰 기관에 속한 운용사들은 계열사 직원들과의 형평성, 내부 감사 파트의 지적 등의 이유를 들며 포트폴리오 회사 최고경영진에게 샐러리맨과 별반 다름없는 성과보상체계를 적용하곤 합니다. 경영진의 보상이 주주의 수익이나 회사의 기업가치와 상관이 없어지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당연히 주주보다는 나를 위해서 일하게 됩니다. 사옥이나 공장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하거나 신사업 진출, 임직원 복지제도 개선 등 투자 논거와는 상관없는 분야에 회사의 자원을 투입하게 됩니다. 경영진이 회사의 발전과 직원의 복지라는 명목으로 본인의 연임과 퇴임 후의 영달을 위하여 회사의 리소스를 활용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결국 제대로 된 보상체계를 만들어 주지 못한 주주의 잘못이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질문들에 긍정적인 답이 나온다면 포트폴리오는 건강하게 관리가 되고 있고 실적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그렇지 않다면 위험이 내재된 상태이며 장차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고 작은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회사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최근에 기업의 M&A활동이 PE사 못지않게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CEO나 CFO들께서 최근에 인수한 회사가 있다면 위의 질문들을 던져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