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바둑계의 ‘여제(女帝)’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 ‘최정(25·사진)’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2019년 우승한 대회만 4개, 코로나19로 대회가 다수 취소된 지난해에도 국내 여자국수전과 여자기성전 우승컵을 차지했다. 지난달에는 IBK기업은행배 여자바둑 마스터스 초대 우승을 거머쥐었고, 진행 중인 한국여자바둑리그도 18전 18승으로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수년째 괴물 같은 기력(棋力)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뭘까. 올해 하림배 여자국수전 5연패 도전을 위해 한창 연습 중인 최정 9단을 최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최 9단은 “코로나19로 많은 대회가 취소돼 아쉽지만 응원해주는 팬들 덕분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며 “국내 대회뿐만 아니라 11월 준결승이 열리는 국제 바둑대회인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고 말했다.
최 9단은 “‘여제’라는 칭호로 불리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천재로 불린 이세돌, 돌부처로 불린 이창호 등 선배 기사들과 비교하면 자신은 무척 평범하다는 얘기다. 최 9단은 “모든 경기 하나하나가 죽을힘을 다해 이긴 경기”라며 “최근에는 중요한 대회들을 치르고 있어서 연습량을 기존보다 더욱 늘렸다”고 했다.
차분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최 9단의 기풍은 ‘전사’와 같은 것으로 유명하다. 과감하게 적진에 뛰어들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싸움을 건다. 어릴 적 말괄량이 같은 성격이 기풍에 반영됐다는 게 최 9단의 설명이다. 실리를 중시하는 최근의 인공지능(AI) 바둑과는 차이를 보인다.
최 9단은 “최근에는 프로기사들도 AI를 활용해 연습하다 보니 AI 특유의 기풍을 배우게 된다”며 “그럼에도 내 스타일을 기반으로 AI의 기풍을 재해석해 받아들이려 많이 노력한다”고 말했다.
최정상급 바둑기사인 최 9단이지만 바둑돌을 잠시 내려놓을 때는 여느 20대 또래와 다를 바 없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팬인 만큼 쉬는 시간에는 BTS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힙합 음악 역시 최 9단이 즐겨 듣는 장르 중 하나다.
최 9단은 “가끔은 연습 중에도 BTS 노래가 머릿속에 떠오른다”면서 “아무래도 요즘은 바쁘다 보니 예전만큼 팬 활동을 열심히 하진 못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여제라고 불리는 최 9단이 가장 신경 쓰는 선수는 누굴까. 그는 곧바로 중국의 ‘위즈잉 6단’을 꼽았다. 일본에서 열리는 바둑여류최강전,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여자바둑대항전 등 국제대회 우승을 놓고 자주 맞붙은 데다 상대 전적 역시 최 9단 기준 17승 18패로 팽팽하기 때문이다.
최 9단은 “라이벌이 있어서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더욱 잘 살필 수 있다”며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에 위즈잉 선수가 출전하는 만큼 심기일전하고 있다”고 했다.
바둑기사로서 최 9단의 목표는 남녀 통합기전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 남녀 통합기전에서 우승한 여자 바둑기사는 중국의 루이나이웨이 9단이 유일하다. 그는 “통합기전 우승은 어릴 적부터 제 인생 목표”라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