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범의 별 헤는 밤] 추석 보름달의 추억

입력 2021-09-22 16:40
수정 2021-09-23 00:06
추석 아침부터 종일 비가 오다가 저녁 무렵에 갰지만 구름이 미처 다 빠져나가지 않아 월출 시각이 한참을 지나도록 구름 위로 높게 뜬 목성만 밝게 빛났다. 그래도 늦게 뜬 보름달이 밤새 훤하게 비췄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추석 보름달과 관련된 아주 오래된 기억이 하나 있다. 추석날 저녁에 고향 집 마당에서 할머니가 여러 음식을 한상 차려두고, 뜨는 달을 보며 절을 했다. 그런데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할머니의 옆모습과 밝은 보름달이 뜨는 상황이 이상하게 생생하다. 천문학을 배우고 그 기억을 돌이켜보면서 고향 집 마당에서 본 보름달이 어디로, 어떤 모습으로 떴을까 의아했다. 고향 마을 동쪽엔 1000m가 넘는 여러 산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월출이라면 보통은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떠올라 대기 영향으로 붉게 보이고, 해가 지고 약간 어두울 때 뜨는 붉은 보름달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하지만 1000m 넘는 높은 산 위로 뜨는 달도 월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도를 펼쳐서 거리를 측정해 보니 고향 집에서 높은 산까지 직선거리가 6.5㎞가량 됐다. 산의 높이가 1㎞가량이니 산 위로 달이 뜨면 고도가 대략 14도 정도 되는 셈이다. 고향 집도 고도가 조금 있고, 더 낮은 능선 사이로 떠올랐으면 14도보다는 다소 낮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본 보름달이었지만 높이 1000m가 넘는 산 위로 해가 지고 나서 40분에서 1시간은 기다려서 보았을 것이다. 이런 계산을 하니 어릴 적 기억의 감흥이 많이 줄어든다. 어릴 적 기억이 엉터리는 아니지만, 그냥 기억은 기억으로 남겨두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지구 반대편, 칠레의 천문대에서 본 안데스산맥 위로 뜨는 보름달 모습은 고향의 보름달과 많이 닮았다. 2200m 고도의 천문대에서 5000m가 넘는 산맥 위로 뜨는 달은 월출 시각을 넘겨야 볼 수 있어서 다소 어두워진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데굴데굴 굴러갈 것 같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보름달 보며 소원을 빌던 할머니작년 추석엔 오랜만에 어머니와 천문대에 올랐다. 당직이라 모시고 다녀왔는데, 어머니가 추석 보름달을 보며 절을 하는 옆모습이 50년도 넘은 기억 속의 할머니와 무척 닮아 있었다. 안 들어도 무슨 소망인지는 뻔하였다. 항상 자식들 건강, 손주들 건강 챙기기 바쁘시니, 그때의 할머니도 그러했을 것이다. 천문학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달을 보며 기원하는 따위(?)의 일은 피했지만, 이런 일상도 천문학의 일부분일 수 있을 것이다. 천문 현상의 경외감으로 우주의 근원적 의문이 있기에 우리는 천문학을 한다. '우주 속의 나'…겸손을 배운다천문학은 참 재미있는 학문이다. 더욱 먼 우주를 보기 위해 구경 10m 망원경을 뛰어넘는 25m, 30m, 40m 망원경을 만들고 있고, 지상에서 보지 못하는 빛을 보기 위해 각종 우주망원경을 올리고, 전 세계에 흩어진 전파망원경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망원경처럼 사용하는 등 최첨단의 과학과 기술을 이용하고, 또 필요로 한다. 그런 한편으로는 달과 별을 보면서 소원도 빌고, 시도 쓰고, 노래도 만드는 등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연한 듯 사용하는 달력과 시간도 천문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색과 온도도 천문학에 기반을 뒀다. 그래서 천체의 색을 보면 온도를 알 수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사는 땅에 그다지 많은 궁금증을 갖지 않았을 오래전에도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무엇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다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을 한 과학자가 있었고, 많은 별 중에서 위치가 변하는 행성을 찾아냈다. 모든 사람이 이들 행성과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할 때, 거꾸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젠 그 태양조차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우리 은하계의 가장자리에 놓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가 아는 은하수가 은하계이며, 그 속에는 수천억 개의 별이 있고, 이런 은하가 수천억 개 모여서 우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아내었다. 우주의 나이도 138억 년 정도임을 아주 정밀하게 알아냈다.

이제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잘 안다. 수천억 개의 많은 은하계 중 하나인 우리 은하계의 한쪽 귀퉁이에 있는 수천억 개의 별 중 하나인 태양이 있고, 태양에 속한 여러 행성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는 각자가 그런 지구에 사는 70억의 인류 중 한 명이다. 보름달이 뜬 밤은 밤새 하늘이 밝아서 다른 별을 보기는 몹시 어렵다. 그러니 추석엔 그냥 보름달이나 보며 인간이라는 존재와 자신을 돌이켜보는 게 어떨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한없이 겸손해진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