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를 평정했던 ‘골프 여왕’ 박세리(44·사진)의 자신감은 여전했다. 최근 한국 여자 골프가 미국 무대에서 부진하다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17일 충북 청주시 세종 실크리버CC(파72·6627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OK저축은행 박세리인비테이셔널(총상금 8억원)에 호스트로 참여하는 그는 “외국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우리 선수들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박세리는 자타공인 한국 골프의 현재를 일군 선구자다. 1998년 LPGA투어 메이저대회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 첫 승을 시작으로 같은 해 국민들을 감동하게 한 ‘맨발 샷’으로 US여자오픈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은퇴하기 전까지 투어 통산 25승을 올렸고,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최연소로 LPGA 명예의전당에 입회했다. 그를 보고 자란 1988년생 동갑내기 박인비, 신지애, 이보미 등 ‘세리 키즈’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한국 여자 골프는 세계 골프의 주류가 됐다.
하지만 오랜 기간 승승장구했던 한국 선수들의 올해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LPGA투어가 반환점을 돈 지 오래지만, 세 번의 우승이 전부다. 자연스럽게 한국 여자 골프 ‘위기론’도 제기됐다. 투어가 정상적으로 운영된 2019시즌엔 한국 여자 선수들이 15승을 합작했다.
박세리는 “그동안 우리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다 보니 우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며 “우리 선수들의 우승이 줄어든 원인이 기량 저하는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한국 선수들로 인해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좋아졌고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가 됐다”며 “외국 선수들의 활약이 우리 선수들에겐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노메달’로 막을 내린 2020 도쿄올림픽 결과에 대해서도 후배들을 감쌌다. 그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이어 지난달 8일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에서 2회 연속 여자 골프 감독을 맡았다. 한국 여자 골프는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선 박인비의 활약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도쿄대회에선 침묵해 2연패를 달성하지 못했다.
박세리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코로나19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올림픽은 여느 프로대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박감이 다르다”며 “고진영과 김효주는 올림픽이 처음이었던 만큼 모든 선수가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게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OK저축은행 박세리인비테이셔널은 박세리가 후배들을 위해 2014년부터 마련한 대회다. 방송에서도 종횡무진 활약을 이어간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 올해 대회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박세리는 “처음에는 내 이름을 건 대회를 연다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선배로서 후배들을 위해 좋은 대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라며 “앞으로도 선수들과 곧 골프장에 돌아올 갤러리를 위한 대회로 꾸미고 싶다”고 했다.
이날 OK저축은행 박세리인비테이셔널 1라운드에선 ‘세리키즈 장학생’ 출신 황유민(18)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황유민은 이날 1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낚아채 선두 이예원(18)에게 3타 뒤진 공동 4위로 마쳤다.
세리키즈 장학생은 박세리가 ‘제2의 박세리’를 선발·육성하기 위해 2016년 도입한 제도다. OK배정장학재단과 함께 국내 골프 연맹에 등록된 아마추어 중·고교생 골프선수를 대상으로 장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해오고 있다. 황유민은 세리키즈 장학생 5기 출신이다. KLPGA투어 3승을 거둔 박현경(21)과 4승의 임희정(21) 모두 세리키즈 장학생(2기) 출신이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