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경차의 귀환

입력 2021-09-16 17:26
수정 2021-09-17 00:08
요즘 오토캠핑장에서 작고 깜찍한 외양의 기아 ‘레이’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경차이지만, 차체가 박스 형태인 데다 높이가 1.7m로 여유 있어 ‘1~2인 차박용’으로 손색없기 때문이다. 장비를 최소화하는 ‘미니멀 캠핑’ 유행 덕도 봤다. 시들해지던 국내 경차 시장에 반전과도 같은 ‘레이 효과’다.

여기에 강력한 불쏘시개가 하나 더 등장했다. 현대차의 경형 SUV ‘캐스퍼’ 돌풍이다. 지난 14일 사전예약 첫날에만 1만8940대가 접수돼 이 회사 판매기록(2019년식 그랜저 1만7294대)을 새로 썼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꼬마유령 캐스퍼’를 연상시키는 앙증맞은 모양새가 먼저 눈길 끈다. 엔트리급 SUV, 온라인 전용 판매, 노사상생 모델의 생산제품이란 화제성까지 몰고다닌다.

마침 올해가 국내 최초 경차 ‘대우 티코’가 첫선을 보인 지 꼭 30년 되는 해다. 호사가들은 벌써부터 ‘경차(인기)의 귀환’을 점친다. 경차도 내구소비재인 만큼 경기 영향을 안 받을 수 없겠지만, 경기가 나쁠 때 판매비중이 높아진 과거 경험 때문이다.

국내 경차의 인기도 외환위기를 전후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가장 높았다. 현대차 ‘아토스’는 1997년 사전계약 1만4418건으로 캐스퍼 못지않았다. 대우차 ‘마티즈’는 출시연도인 1998년 한 해에만 판매량 10만 대를 기록했다. 이 영향으로 경차 판매비중은 한때(2001년 8월) 35%까지 치솟았다. 다시 한 자릿수로 쪼그라들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와 ‘모닝’(기아) ‘레이’ ‘스파크’(힌국GM)의 3파전 경쟁으로 2012년 17.3%(약 20만 대)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작년 판매량은 9만7000대로 급감했고, 비중도 5%대로 떨어졌다.

‘경차의 귀환’을 점치는 것은 소비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한 20~30대 MZ세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들은 전세에 살면서 럭셔리카를 몰고 명품을 소비하기도 하지만, 유니클로 티셔츠를 입고 샤넬 가방을 메는 데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다. 때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때로는 가심비(가격 대비 만족도)에 꽂힌다. 소형차는 물론 경차의 편의기능과 마감재 수준도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 또 친환경을 중시한다면 내연기관 중에서도 탄소 배출이 적은 경차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차, 큰 기쁨’(티코의 광고카피)이 30년 만에 다시 회자될지 지켜볼 일이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