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의 대기가 섞인 초가을에 브람스의 음악으로 가을을 앞당긴다면, 늦가을의 대기가 섞인 초겨울엔 라흐마니노프다. 브람스로 이미 가을을 체감하고 있는 음악 애호가가 준비할 다음 선곡으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크렘린의 종소리’라는 별명과 어울리는 도입부의 피아노 터치는 언제 들어도 인상적이다. 중후하고 아름다운 러시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애수에 찬 2악장은 감미롭다. 3악장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영화, 드라마, CF에 사용된 피아노협주곡 중에서 인기곡이다. 특히 2악장을 각색한 에릭 카멘의 ‘All By Myself’는 지금도 유명한 팝 명곡이다. 그만큼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시적인 정서가 풍부하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작품을 해석한다는 건 역대 최고 피아니스트에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손이 컸던 라흐마니노프는 힘과 기교를 겸비한 빼어난 연주자로 유명했다. 4개의 피아노협주곡 중 2번과 3번이 가장 유명하다. 1번은 10대 후반에 작곡했다가 나중에 전면 수정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협주곡 2번을 라흐마니노프의 첫 번째 협주곡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낭만성의 한가운데에서 애수와 사랑,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의 인생에서 힐링을 뜻한다. 자기 분석에 냉철하며 철두철미한 원칙론자의 성품을 지녔던 그였지만 1897년 내놓은 교향곡 1번은 실패했다. 심각한 노이로제 증세를 겪은 그는 달 박사의 끊임없는 자기암시 요법으로 자신감을 회복했고 1901년 협주곡 2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연주와 모스크바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선율로 이뤄진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이듬해 출판된 이 협주곡은 달 박사에게 헌정됐다.
라흐마니노프는 체계적·구조적으로 설득하진 않는다. 대신 마음에 비친 감상을 직접 일대일로 대응하는 음을 통해서 표현하려고 했다. 깊은 의미 말고 쉽고 친숙하며 직설적으로 다가와 기억에 오래 남는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은 앞으로도 대중성을 잃지 않을 것 같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은 명반이 많다.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의 구반인 프레빈·런던심포니, 신반인 하이팅크·콘세르트헤바우, 알렉시 바이센베르크와 카라얀·베를린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오먼디·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등이 생각난다.
듣는 이를 강렬하게 사로잡는 연주는 역시 스뱌토슬라프 리히테르와 비슬로츠키·바르샤바필하모닉의 1959년 4월 녹음이다. 거장 피아니스트 리히테르의 연주를 서구와 미주에서 접하기 힘들었을 때다. 비범한 피아니즘이 미지의 신비로움을 풍긴다. 리히테르는 실황에서 넘치는 페이소스를 분출하는 데 비해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좀 더 단정한 구축미로 정돈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여기서 리히테르의 피아노는 흡사 파도와도 같다. 기복이 크고 템포의 신축성이 심하다. 환상적인 낭만의 파도가 둑이 터진 듯 밀려온다. 그럼에도 피아니스트의 정신성은 웅혼하고 강해 신파에 빠지지 않는다. 약간 빛바랜 듯한 오케스트라의 색채도 리히테르의 피아노와 잘 어울려 늦가을의 미장센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류태형 < 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