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세상' 꿈꿨지만…택시 90% 완전 장악이 독 됐다

입력 2021-09-15 06:00
수정 2021-09-15 06:01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정치권과 소상공인으로부터 거센 비판에 직면한 카카오가 결국 일부 사업을 조정·철수하겠다고 밝혔다. 3000억원 규모 상생 기금도 조성했다. 100개가 훌쩍 넘는 계열사 가운데 카카오모빌리티가 우선순위로 사업을 조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90%를 웃도는 택시업계에서의 과도한 독점적 지위가 도리어 독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고개 숙인 김범수 의장15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13~14일 주요 계열사 대표 전체 회의에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사를 창업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최근의 지적은 사회가 울리는 강력한 경종"이라며 "카카오와 모든 계열 회사들은 지난 10년간 추구했던 성장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장을 위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기술과 사람이 만드는 더 나은 세상이라는 본질에 맞게 카카오와 파트너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카카오는 플랫폼 종사자와 소상공인 등 파트너들과 함께 성장하자는 취지의 상생 기금 3000억원을 5년에 걸쳐 마련할 계획이다. 김 의장이 소유하고 가족이 경영하는 투자전문업체 '케이큐브홀딩스'는 미래 교육·인재 양성 등 사회적 가치 창출에 집중하는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치권 및 소상공인들의 비판을 감안, 혁신과 상생을 더할 수 있는 영역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면서 '골목 상권 논란' 사업은 계열사 정리와 철수를 검토한다는 방침을 굳혔다.카카오모빌리티, 왜 첫 번째 타깃 됐나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카카오모빌리티가 1차 대상이 됐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기업 고객 대상 꽃·간식·샐러드 배달 중개 서비스를 철수하기로 했다. 회사 측은 "해당 서비스를 제공해 온 기업에 미칠 사업적 영향을 고려,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사업을 축소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마찰을 빚은 택시업계를 달래는 방안도 내놨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돈을 더 내면 카카오 택시가 빨리 잡히는 기능인 '스마트호출'을 폐지하고 가입 기사에게 배차 혜택을 주는 요금제 '프로멤버십' 가격을 기존 9만9000원에서 3만9000원으로 낮추기로 했다.

또 서울에 이어 지역별로도 '가맹택시 상생 협의회'(가칭)를 꾸려 전국 법인, 개인 가맹택시 사업자들과 건강한 가맹 사업 구조 확립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아울러 대리운전 중개 수수료는 고정 20%에서 수급 상황에 따라 0~20% 변동을 추진하고 본사 차원의 상생 기금에 참여해 다양한 공급자·종사자의 복지를 증진하는 방안을 연내 발표할 계획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 진행되는 대리운전 사업자들과의 논의 채널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상생안을 마련해나갈 예정"이라며 "향후 자율주행과 이동 서비스 혁신, 기업간 거래(B2B) 분야의 모빌리티 기술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신사업 발굴과 글로벌 비즈니스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유료화 추진하다 뭇매 카카오모빌리티가 집중 견제 대상이 된 것은 특히 택시 시장에서의 독점점 지위를 이용해 가격 인상 시도를 꾸준히 해온 게 발단이 됐다는 평가다. 카카오의 성장 방식은 구글·애플·아마존 등 글로벌 IT 기업들의 확장 모델과 유사하다. 공격적 인수합병(M&A)과 투자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 뒤 지배력을 앞세워 유료 모델로 전환하는 방식.

문제는 독점 체제를 앞세워 수익성 확보를 추진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카카오T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카카오T는 우선 배차가 가능한 스마트 호출 기능 요금을 기존 정액제 요금(일반 시간 1000원·심야시간 2000원)에서 최대 5000원까지 받을 수 있는 탄력요금제로 변경을 시도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택시 호출이 많은 특정 시간대 외에는 가격이 더 싸진다고 설명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에 스마트 호출료 범위를 '0~5000원'에서 '0~2000원'으로 줄이며 후퇴했다.

카카오T는 국내 택시 호출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사실상 독점 체제를 구축했다. 국토교통부와 카카오모빌리티가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2021년 택시 호출앱 현황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전국 택시기사는 24만3709명, 카카오T 가입기사는 22만6154명으로 약 92.8%가 이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카카오T 외에도 우티(UT), 타다, 마카롱, 지방자치단체 공공앱 등이 있으나 카카오T 지배력이 압도적이라고 봤다. 택시 플랫폼 시장 중 '중개·호출 플랫폼 분야'에서 완전한 독점적 위치에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8월 택시호출앱의 월간 활성이용자수(MAU)는 카카오T가 1016만명에 달하는 반면 UT 86만명, 타다 9만명, 마카롱 3만명에 그쳤다.


카카오의 유료모델 전환 시도는 또 있다. 앞서 카카오는 지난 3월 택시 기사들로부터 월 9만9000원을 받고 배차 혜택을 주는 '프로 멤버십' 제도를 도입하며 택시 기사 대상으로 유료화를 본격화한 바 있다. 이 밖에도 대리, 주차, 셔틀, 기차, 항공, 퀵, 공유킥보드 등 카카오모빌리티가 진출한 서비스도 유료화나 요금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장유진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 회장은 최근 관련 토론회에서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하거나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줄 땐 규제를 많이 받는데 카카오는 예외인 듯싶다"면서 "다른 대기업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카카오의 강점이었던 친근했던 기업 이미지를 잃게 됐다"면서 "카카오가 초심을 회복해 해외 진출, 미래 투자 등에 힘쓴다면 추가 논란 확산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