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노란 메기, 초록 메기 다 죽이면…

입력 2021-09-13 17:29
수정 2021-09-14 00:12
카카오 네이버 쿠팡 야놀자 등 빅테크·플랫폼기업들이 동네북 신세가 됐다. ‘성장·혁신의 대명사’에서 졸지에 ‘탐욕·불공정의 아이콘’으로 추락한 듯한 분위기다. 여당과 금융당국,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나서 골목상권을 침범하고, 높은 수수료와 가격 인상으로 중소 상공인들을 힘들게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네이버파이낸셜 카카오페이 토스 등의 금융상품 비교·추천판매 금지 방침을 밝히면서 핀테크 본격 규제의 서막을 알렸다. 공교롭게도 여당 의원들은 이날 ‘공룡 카카오의 문어발 확장-플랫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 및 골목상권 생태계 보호 대책 토론회’를 열었다.

계열사 수로만 보면 카카오가 문어발을 넘어 ‘지네발’ 확장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카카오의 계열사(상반기 기준)는 158개(국내 118개, 해외 40개)에 달한다. 하지만 계열사의 절반 이상이 엔터테인먼트와 게임 등 콘텐츠 분야 업체다. 콘텐츠·창작 86개(국내 59개, 해외 27개), 모빌리티·인공지능(AI)·블록체인 등 테크분야 23개(국내 19개, 해외 4개), 벤처투자·육성 14개, 금융·핀테크 5개 등이다. 특수관계인이 지분을 갖고 있을 뿐 카카오 사업과 무관한 계열사도 14곳이다. 문어발이라는 말 자체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가는 플랫폼기업과 산업 생태계를 감안하지 않은 낡은 잣대라는 게 업체들의 항변이다.

카카오가 막강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택시호출·대리운전(카카오T), 간편결제(카카오페이), 스크린골프(카카오VX), 어린이 영어교육(카카오키즈), 미용실 예약(헤어샵) 등 생활과 밀접한 서비스를 내놓다 보니 영향력이 더 커 보이는 측면도 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사람들의 일상을 플랫폼 안으로 더욱 깊숙이 몰아넣으면서 관련 업체들의 위력은 증폭됐다. 초연결시대를 맞아 모바일 서비스가 세분화·전문화하면서 플랫폼 업체들의 조직과 계열사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독점·가격인상에 따른 비판은 있지만, 카카오 네이버가 ‘승자독식 시대’의 주인공이 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핀테크기업들이 불러온 혁신과 경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간편 송금과 결제 등 인터넷은행들의 새 서비스에 시장과 소비자는 열광했다. 카카오뱅크가 상장하자마자 KB금융의 시가총액을 훌쩍 뛰어넘어 대장주 자리에 앉은 이유다. 다음달 출범을 앞둔 3호 인터넷은행 토스뱅크가 연 2%의 이자를 주는 수시입출금식 통장을 내놓기로 하는 등 핀테크의 혁신 서비스는 이어지고 있다.

핀테크 기업의 혁신 서비스를 허용해준 게 금융당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인터넷은행 규제 방침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판을 깔아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뒤엎겠다는 건가. 예나 지금이나 금융산업을 정부가 좌지우지하려는 태도도 문제다. 은산분리(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의 폐해를 줄이고, 정체된 은행산업에 혁신·경쟁의 물결을 일으킬 ‘메기’를 투입하기 위해 인터넷은행을 허용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노란 메기(카카오), 초록 메기(네이버), 파란 메기(토스) 다 죽이면 혁신은 누가 하겠나. 기득권층의 반발로 좌절된 타다와 원격의료 등의 사례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여당의원들은 10월 국정감사를 벼르고 있고, 국회에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법’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등 플랫폼기업 규제 법안이 10여 건 발의돼 있다. 빅테크·플랫폼 기업들의 혁신 동력과 의지가 꺾이지 않을지 걱정된다.

사업 영역 확장과 몸집 키우기를 문제 삼는다면 한국에서 구글 아마존 같은 글로벌 빅테크의 출현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구글과 아마존은 손대지 않는 분야가 없다. 빅테크·플랫폼기업에 인수합병(M&A)을 통한 확장전략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위축되면 스타트업 생태계까지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