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엑소더스’는 조선업체 협력사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빅3’ 조선업체도 지난해 말보다 인력을 4%가량 줄였다. 수주 호황이라고는 하지만 당장 고용을 늘릴 만큼 일감이 없고, 자금 사정도 녹록지 않다는 게 조선 빅3의 설명이다.
12일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전문분석업체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선박 발주량 137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 중 한국은 78만CGT(57%)를 수주하며 1위를 차지했다. 4개월 연속 1위다. 올 들어 누적 수주(1~8월)는 1366만CGT(42%)로, 조선업계 ‘슈퍼 사이클’로 불린 2008년 이후 최대 실적이다.
인력 통계는 수주와 정반대다. 올 6월 말 기준 빅3 업체 전체 직원 수는 3만8502명으로, 작년 말(4만103명)보다 1600명가량 감소했다. 3년 전인 2018년(4만1615명)과 비교하면 3000명 이상 줄어드는 등 매년 인력이 감소하는 추세다. 이 통계에는 협력사 직원이 빠져 있다. 본사 정규직 및 단기 근로자만 직원 숫자에 포함된다.
13년 만의 호황에도 조선업체들이 인력을 줄인 이유는 당장의 일감이 많지 않아서다. 통상 대형 선박은 수주부터 건조에 들어가기까지만 1년 이상이 걸린다. 발주사 요구에 맞춘 설계에만 이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작년 상반기까지도 수주가뭄에 더해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현재 조선소 도크는 대부분 비어 있다. 수주랠리가 올 들어 본격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력이 필요한 시점은 내년 하반기부터라는 것이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조선업체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것도 고용에 악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조선 빅3는 올 상반기에만 3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선박 제조 비용의 20~30%를 차지하는 후판 가격이 작년 대비 두 배 이상 급등한 여파다. 과거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저가 수주한 물량이 상당하다는 점도 조선업체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내년 하반기부터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건조 물량이 늘면서 인력난이 심해질 것이란 진단이다. 특히 친환경 선박 및 자율운항선 등 미래 먹거리 개발을 주도할 고급 연구인력, 용접 등 핵심 기술을 보유한 숙련공이 부족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부터 인력 수요가 늘어난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적자 폭이 커진 상황에서 내년에 대비해 사람을 더 뽑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