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40代 임금피크제는 무효"

입력 2021-09-10 17:54
수정 2021-09-10 23:58
임금피크제가 40대 중반부터 적용되고 삭감률도 심하다면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최근 금융권 등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이 늘어나고 있어 이번 판결이 향후 유사 소송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고등법원 제1민사부는 지난 8일 주식회사 대교의 전현직 학습지 교사들이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임금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 회사는 임금피크제로 감액한 임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

대교는 2009년과 2010년에 취업규칙을 변경해 학습지 교사의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대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직급에 따라 G1·G2 직원은 57세까지, G3·G4 직원은 5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G1은 50세부터, G2는 48세부터, G3·G4는 44~46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게 했다. 직급별로 4~5회 내에 승급(승진)을 하지 못하면 그 직급에서 정해진 나이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방식이어서 G3·G4 직원은 이르면 44세부터 임금이 감액되는 구조다. 대교가 도입한 임금피크제의 임금 삭감률은 30%에서 시작해 50%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 임금 삭감률은 감봉 제재를 받은 직원보다 높았고, 대기발령을 받은 직원과 비슷했다.

앞서 1심 법원은 “임금피크제가 근로자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며 절차적인 문제를 들어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번 2심 재판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임금피크제 자체가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근로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라며 “40대 중반에 적용받는 근로자들은 정년까지 10년 동안 임금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정한 고령자고용법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고령자고용법을 이유로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은 물론 사회질서에도 반했다고 본 첫 판결”이라며 “최근 법원이 임금피크제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교 측은 “기존 임금피크제는 폐지됐으며 현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단축근무제를 도입해 만 57세부터 감소된 근로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