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인플레 대처법'…금리 올린 러시아, 눈치보는 터키

입력 2021-09-10 17:16
수정 2021-09-11 01:14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1년 전 선진국들이 뭉칫돈을 푼 여파가 신흥국으로 번졌다. 세계 식량 가격이 1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는 등 물가가 요동치면서다. 각국의 대응은 엇갈리고 있다. 브라질과 러시아는 서둘러 금리 인상에 나섰고 터키, 폴란드 등은 관망하고 있다.

식품 물가, 10년 만에 최고치세계식량농업기구(UN FAO)가 지난 2일 발표한 올 8월 글로벌 식량가격지수는 127.4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UN FAO는 2014~2016년 평균 식품 가격을 기준으로 매달 가격지수를 발표한다. 작년 10월부터 식품 가격이 급격히 올랐다. 올 5월엔 127.8로 2011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식용유 등 식물성 기름값이 올해 식품 물가 상승을 촉발했다. 지난달 식물성 기름가격지수는 165.7이다. 지난해 5월 이후 1년3개월 만에 식료품값이 40% 급등했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이 지난해 역사상 가장 많은 수준의 달러와 유로화를 찍어낸 탓이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돈을 풀자 원자재와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

여파는 신흥국으로 번졌다. 선진국보다 영향을 크게 받았다. 개발도상국 전문 금융회사 텔리머의 하스나인 말릭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2010~2011년 아랍의 봄 시위 직전 중동에선 식품 가격이 크게 뛰었다”며 “남미와 아시아 일부 지역이 다음 주자가 되지 말란 보장은 없다”고 했다. 급격한 물가 상승 여파로 정치 상황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 경기부양 여파 영향물가 상승에 대응하는 재정당국의 태도는 엇갈렸다. 금리 인상에 적극 나선 ‘매파’ 선두는 러시아다. 이달 총선을 앞두고 물가 잡기에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10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높인 연 6.75%로 조정했다. 3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금리를 2.5%포인트 올린 것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6.7%에서 4%대로 끌어내리는 게 목표다.

브라질도 3월 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사상 최저였던 연 2%에서 5.25%로 올렸지만 여전히 물가는 고공행진을 했다. 브라질 화폐인 헤알화가 폭락하면서다. 지난달 브라질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9.68%로 여전히 정부 목표인 5.25%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터키와 폴란드는 온건한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비둘기파’로 남았다. 터키는 지난달 소비자 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19.25% 급등했다. 올 2분기 경제 성장률이 22%에 육박하는 등 가파른 회복세를 이어가면서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달 12일 연 19%인 기준금리를 다섯 달 연속 동결했다. 전체 물가 상승률보다 기준금리를 높게 유지하겠다던 계획도 바꿨다. 앞으로 전체 물가 대신 핵심 물가를 금리 인상 지표로 삼을 방침이다.

폴란드의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인 연 0.1%다. ‘물가 상승으로 큰 재앙이 올 것’이란 경고가 잇따랐지만 폴란드 중앙은행은 8일 기준 금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8월 폴란드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5.4%다. 방역 대응 따라 경제 상황 달라져경제 성장과 물가 상승을 함께 경험한 이들 신흥국은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기간 봉쇄 대신 경제 활성화에 집중했다. 인명 피해를 감수하는 대신 정부가 경제에 숨통을 터줬다. 물가를 잡기 위해 도미노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방역 조치를 강화한 일부 아시아 국가는 급격한 물가 상승 고민에선 한 발 떨어져 있다. 하지만 물가 하락과 경기 침체가 동반하는 ‘나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이동을 봉쇄한 태국은 지난달 소비자 물가가 전년 대비 0.02% 떨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7월 물가가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