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30년까지 세계 친환경 선박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을 75%까지 끌어올려 압도적 1위를 굳히겠다는 구상을 9일 내놨다. 자율주행선박, 무탄소선박 등 미래선박 분야에서도 국내 조선업체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4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의 초격차 기술력 확보를 골자로 한 ‘K조선 재도약 전략’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탄소중립과 친환경 물결은 조선·해운 산업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한국이 세계 1등 조선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정부도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K조선이 친환경·미래선박 주도”
정부는 우선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등 친환경 선박시장에서 기술격차를 벌려 나가기로 했다. 이는 최근 조선업계의 자신감이 반영된 구상이다. 한국 조선업계는 올 들어 7월까지 대형 컨테이너선·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등 고부가가치 선박 세계 발주의 63%, LNG선 등 친환경 연료 추진선의 66%를 수주했다. 대형 LNG운반선은 기술 우위를 기반으로 세계 발주의 97%를 쓸어담았다.
정부는 적극적 투자가 병행될 경우 친환경 선박시장에서 2030년까지 시장점유율을 75%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LNG 연료탱크·화물창·연료공급시스템 국산화 기술을 내년까지 개발하고, 중소조선사의 소형 LNG추진선 설계 기술개발을 지원한다. LNG벙커링 전용선박 2척을 건조하고, 주요 항만에 육상 LNG벙커링 터미널을 구축할 계획이다.
자율주행선박 확대에도 16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한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2030년까지 세계 자율운행 선박 시장의 50%를 점유하는 게 목표다. 최근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사람의 개입 없이 원격으로 선박을 운항하는 데 성공해 상용화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탄소선박 상용화도 조선업 재도약을 위한 중장기 과제로 추진된다. 탄소중립 이슈가 대두되면서 점차 수소·암모니아·전기 등을 전원으로 사용하는 무탄소선박이 각광받을 것이란 전망에 따라서다. 정부는 내년부터 2540억원을 투입해 2050년까지 무탄소선박의 단계적 상용화를 이루고, 국제 표준을 주도하겠다는 계산이다. 2030년까지 교체 주기가 도래하는 국가 관공선 467척 중 83%에 해당하는 388척을 친환경 선박으로 전환하는 작업도 추진한다. 이는 국내 중소조선소에 안정적 일감을 제공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력 양성으로 생산성 향상”정부는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 실적에 걸맞은 생산역량 확보를 위해 인력 양성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 조선분야 일자리 증가가 전망되지만, 계속된 인력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서다. 한국 조선업계는 지난해 글로벌 선박 발주량(2264만CGT)을 올 들어 5개월 만에 넘어섰고, 최근 3개월간 글로벌 발주의 47%인 589만CGT를 수주하며 호황기를 맞고 있다.
이에 정부는 기술인력 양성사업을 확대하고, 신규 채용 인력에 2개월간 월 100만원의 훈련수당을 지급하는 등 지원키로 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조선소 야드 전(全)공정을 디지털화한다. 2023년까지 국내 대형 3사(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를 중심으로 데이터 플랫폼을 공동 구축한다. 신용보증기금 선수금환급보증(RG)과 기자재 제작금융 한도도 현행 각각 150억원, 70억원에서 상향하는 등 금융지원도 확대키로 했다. 문 대통령은 “조선 재도약 전략을 충실히 이행할 경우 내년까지 8000명의 기술인력이 양성되고, 2030년까지 조선분야 생산성을 30%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는 사람과 기술에 대한 투자를 통해 기업과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만 유럽연합(EU)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합병에 대해 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는 것이 조선업 재도약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또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적자 누적 문제도 조선업계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라는 평가다.
이지훈/임도원/강경민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