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대리점주 절반 "노조에 괴롭힘 당했다"

입력 2021-09-09 17:55
수정 2021-09-16 16:32

강원 동해에서 CJ대한통운 택배 대리점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매일 아침 택배노조원들의 욕설과 폭언을 듣는다”며 “딸들이 일을 도와주러 왔다가 노조가 걸어 놓은 ‘수수료는 노동자의 피땀이다. 빨대 꽂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보고선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가 배송을 거부하는 바람에 가족들이 함께 노조가 남기고 간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롱·욕설, 전국적으로 만연”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이 전국 대리점 251곳을 대상으로 조사해 9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90명 중 102명(53.7%)이 노조로부터 대면·전화·문자로 폭언·폭행·집단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14.9%는 거의 매일 노조의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했고, 주 2~3회 시달렸다는 응답도 16.8%에 달했다.

괴롭힘 유형으로는 조롱(59.3%)이 가장 많았고 욕설·폭언(43.5%), 집단적 따돌림(18.5%), 폭력(5.6%) 등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 대부분(81.3%)은 폭언과 폭행, 집단괴롭힘을 당한 뒤 혼자 참거나 음주로 해결한다고 답했다.

정씨를 비롯한 대리점 소장들은 “본사 직원과 비노조원이 참여하고 있는 메신저에서도 조롱과 욕설의 대상이 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메신저 ‘밴드’에는 “중간에 처먹는 게 경영이면 조폭 양아치 ××들이 보호비로 뜯는 것도 경영이냐. 밤에만 돌아다녀라 흡혈귀 ××들아”, “수수료는 내 돈인데 이 걸 대리점 ××들한테 몇 프로 뜯길지 교섭하는 것도 웃기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이 밴드는 전국 단위로 사용되고 있지만 글 내용을 조금만 봐도 조롱과 욕설의 대상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전남에서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을 하는 김모씨도 “노조원들이 오전 10시30분이 되면 일을 중단해 나머지 작업은 모두 비노조원과 소장의 몫이 된다”며 “아무리 설득을 해도 민주노총에서 시키는 대로만 행동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지방노동위원회를 다녀왔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며 “조정에서도 대리점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는 “노조 규약에 대리점 대표와 비노조원을 상대로 하는 폭언과 폭행, 협박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명문화하고 택배노조 위원장과 집행부 전원은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라”고 요구했다. 택배노조, CJ대한통운서 기자회견대리점 소장에 대한 택배노조원들의 폭언·협박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노조는 이날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강남구 한 택배대리점 소장이 구청에서 노인에게 무상지급하는 마스크를 빼돌렸다”는 주장을 펼쳤다.

강남구청은 65세 이상 구민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기 위해 CJ대한통운을 통해 택배를 발송했다. 지난달 24일 CJ대한통운 강남논현대리점 소장인 정모씨가 마스크가 든 100여 개의 상자를 자신의 차에 몰래 빼돌렸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소장은 절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전산을 조작했고, 절도에 항의한 택배기사를 해고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리점 측은 “주소 오류 등으로 일부 마스크를 배송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구청이 기재한 주민등록상 주소에 물건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살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대리점 측은 “일반적인 택배라면 상품이 반품되는데, 구청에서 보낸 물건이라 반품 기준이 없었다”며 “노조는 단순 배송 착오를 착복으로 과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사측이 지난달 1차 조사를 했으나, 노조와 대리점 소장 측 주장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장강호/최예린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