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책방 최인아 대표, '샐러리맨 성공기' 쓴 29년 카피라이터…직장생활 해법 나누는 책방주인 되다

입력 2021-09-09 17:33
수정 2021-09-09 17:40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아이디어가 막힐 때 영감을!’

책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방황하고 있지 않냐고, 일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고 있진 않냐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책장을 쓱 넘겨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최인아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대형 서점과 달리 조용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6000여 권의 책 앞에 놓인 독특한 분류 팻말을 한참 동안 바라보게 된다. 경제·경영, 인문, 예술 등 기존 서점에서 익히 봐왔던 책 분류와 다르게 말을 거는 듯한 친근한 문구와 함께 책이 정리돼 있다.

여기엔 손님들에게 ‘해법’을 제시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심해온 최인아 대표의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최 대표는 1984년부터 29년간 제일기획에서 일한 광고 카피라이터 출신이다. 그는 “평생 한 일이 아이디어로 해법을 찾는 것이어서 책방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해법을 떠올렸다”며 웃었다.

“많은 분이 책을 안 본다고 하시는데, 안 보니까 책에 더 관심을 두지 않고 모르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손님들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들로부터 출발해 해답을 제시하는 책들을 소개하게 됐습니다.”

최 대표가 책방 문을 연 건 5년 전이다. 당시 그가 책방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큰 화제가 됐다. 최 대표는 삼성그룹 공채 출신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상무, 전무, 부사장까지 차근차근 올라갔고, 2012년 퇴사했다. 그런 그가 4년 만에 돌아와 책방을 시작한다니 주변에선 다들 만류했다. “모두 ‘요즘 누가 책을 사느냐’ ‘나이를 생각하라’며 말렸죠. 저는 원래 걱정이 많고 귀도 얇은 사람인데, 신기하게 그땐 그 말이 안 들렸어요.”

다양한 업종 가운데서도 굳이 책방을 골랐을까. 그는 “출발점은 나 스스로였다”고 말했다. “제가 원하는 세 가지가 만나는 지점이었기 때문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나 혼자만 재밌는 게 아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또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 뭘까 고민했고, 그 교집합이 책방이었습니다.”

지인들의 우려에도 최인아책방은 5년 만에 강남의 대표 책방으로 자리매김했다. 책방에서 운영하는 북클럽 회원이 700여 명이나 된다. 살롱으로도 입소문이 났다. 각종 강연과 클래식 연주회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책방에서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살롱의 역할을 하게 된 건 ‘생각의 숲을 이루다’란 슬로건과 연결된다.

“사회에서 일을 해보니 늘 문제 해결의 연속이었어요. 그 힘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서 나오잖아요. 그런데 다들 자질은 있지만 주입식 교육을 받아서인지 생각은 잘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살롱엔 다양한 세대가 참여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핵심 고객은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직장에서 오랫동안 후배들과 함께 일하고 상담해준 경험을 살려 ‘쟁이의 생각법’이란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광고쟁이’라는 용어처럼 없는 걸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생각법이란 의미다.

“기획서를 들고 상사에게 가면 ‘맨날 똑같은 거 말고 다른 건 없니’라는 얘기를 듣게 되잖아요. 이런 어려움을 겪는 직장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곳에서 열리는 강연들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지혜를 줄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한다. “왜 우리가 21세기에 살면서 몇백 년 전 그림을 봐야 할까 질문해 봤어요. 답은 명화가 그 예술가의 새로운 도전과 고난이 함께 맞물려 탄생한다는 점에 있더라고요. 매일 일에 시달리는 직장인도 예술가의 영혼이 깃든 명작을 보며 위로와 힘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 대표는 팬데믹 시대에도 책방과 살롱이 존재해야 하는 의미를 되새기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강연뿐 아니라 책방에서 일 대 일 마음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요즘처럼 심리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고 싶어지잖아요. 병원까지 찾아가기 망설여지는 분들이 안온한 공간에서 마음 얘기를 쉽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책도 추천했다. 빈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교수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저자의 실제 경험담을 담고 있다. “비록 나에게 환경을 통제할 힘은 없더라도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 하는 권리는 있다는 내용이 있죠. 힘든 상황에서도 나의 반응에 따라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