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안 연내 처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 법을 둘러싸고 노노 및 사사 갈등이 관측되고 있다. 경영계에서는 플랫폼 기업들을 주로 대변하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이 '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힌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이 법안은 플랫폼 시장 신규 진입 기업들에게 장벽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서며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이 법이 통과되면 플랫폼 노동자들이 되레 노동자로 인정 받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과 "플랫폼 근로자 권리가 한단계 전진하는 것"이라는 반박이 대립한다. 코스포와 경총, '엇갈린 입장'정부는 작년 12월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 발표 이후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플랫폼 종사자법)'을 추진해 왔다. 올해 3월 장철민 민주당 의원의 주도로 법안이 발의됐으며, 지난 7월 14일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입법 공청회 절차를 거쳤다. 이후 당정이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안은 플랫폼 이용 사업자에게 계약서 서면 제공, 적정한 보수 결정, 불리한 처우나 차별적 처우 및 책임 전가 금지, 이용계약 변경시 10일, 이용계약 해지시 15일 전 내용과 이유·시기 등을 서면으로 제공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계약에서 정한 의무 이외의 사항을 수행할 것을 종사자에게 요구하면 안 된다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또 고용노동부 장관이 플랫폼 종사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3년 범위에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플랫폼 종사자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를 누려왔던 플랫폼 기업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내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를 두고 같은 경영계 단체로 분류될 수 있는 경총과 코스포가 다른 입장을 보여 눈길을 끈다. 코스포는 쏘카, 우아한형제들, 직방, 컬리 등 법안이 통과될 경우 가장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다.
코스포 관계자는 "우리는 처음부터 이 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며 "법안을 두고 중간중간 정부와 무리한 조항에 대해 조율을 시도했고, 내용들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큰 이견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회원사가 반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플랫폼 종사자와 기업 사이 계약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게 모두에게 도움될 것이라고 봤다"며 "플랫폼 사업의 핵심 분야인 배달 대행에서 가장 큰 당사자는 코스포이기 때문에 경총보다 우리의 목소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총의 입장은 다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오히려 플랫폼 신생 기업이 생기는 것을 막는 규제로 작용해 산업 발전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준희 경총 노사관계법제 팀장은 "법안에서 규정하는 플랫폼 근로자의 지위보장 조건을 전부 맞춰줄 수 있는 기업은 손에 꼽을 것"이며 "플랫폼 종사자법안은 배달의민족처럼 이미 시장 지배자적 지위를 갖고 있는 기업에는 불리할 게 없고 오히려 신생 경쟁 기업을 막아주는 진입 장벽이 돼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더 많은 플랫폼 근로 유형이 등장할 텐데 그때마다 개별법을 만들어 해결할 것인가"라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플랫폼 종사자법을 규제 확대로 보는 경총과 코스포 사이에 입장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경총은 노동법 등 이미 상당한 규제를 안고 있는 기업들을 대변하는만큼,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 육성 트랙에 있는 플랫폼 기업과 입장이 같을 수 없다"며 "당분간 플랫폼 산업 분야의 주도권을 두고 코스포와 경총이 샅바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노동법 전면 적용' vs '이 법안이라도 받아야' 이 법에 대한 노동계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반대다. 플랫폼 종사자들을 기존 노동법 질서에 따른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 대책회의는 지난달 20일 "정부·여당은 플랫폼 종사자법 추진을 중단하라"며 "이 법은 노동기본권 배제가 가능한 고용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라고 성토했다. 즉 법안이 통과되면 플랫폼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상 노동자로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고 영원히 회색 지대에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다.
최근 플랫폼 분야 노조들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노조로서 법적 지위를 인정 받은 것도 이 법을 반대하는 이유다. 중노위는 올해 들어 플랫폼 기업인 쏘카를 타다 드라이버의 사용자로, 카카오모빌리티를 기사들의 노조법 상 사용자로 인정했다. 이들은 기존 노동관계법 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는 '7부 능선'을 넘었는데, 이 법 때문에 이전으로 회귀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법이 별 효용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입장문을 통해 "계약서 작성이나 노동조건 변경시 사전고지의무 부여는 대형 배달기업을 중심으로 이미 이뤄지고 있다"며 "15일 전에 예고를 하든, 30일 전에 예고를 하든 불이익한 노동 조건 변경에 대해 노동자가 문제제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반대로 플랫폼 종사자법이 현재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에 거스르는 큰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배민라이더스지회 등 일각에서는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놓으라"는 의견도 보인다.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관계법 전면 적용은 지난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만큼, 근로계약서 교부나 적정 임금 규정 등 실질적으로 플랫폼 종사자의 이익을 보호해 주는 법안을 일단 받고 난 후 추가적인 권리 확보를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법안에서는 플랫폼 종사자가 근로기준법, 노조법, 산안법에 따른 근로자에 해당한다면 이 법들을 플랫폼 종사자법에 우선해서 적용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만큼, 종사자 권리 보호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원칙적으로 법안에 반대며, 플랫폼 공제회에 관심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공제회도 발족을 시켰다. 결국 법률안을 두고 당사자들마다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동상이몽을 꾸는 가운데, 법률안을 발의한 정부·여당은 밀어붙이기에 나선 형국이다.
한편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자로 인정할지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논란 중이다. 독일 연방노동법원은 지난해 12월 "플랫폼 종사자는 근로자"라는 판결 내놓은 바 있고, 영국 법원도 올해 우버 택시 근로자에게 근로자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프랑스 최고 법원도 지난해 우버와 운전자 간 계약은 고용계약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스페인 정부도 배달라이더에 한정해서 근로자로 추정시키는 법령을 통과시킨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 플랫폼 종사자 숫자는 17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