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지 20년이다. 그동안 인류사회는 테러를 일상으로 달고 살았다. 그것이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든, 빼앗긴 영토를 둘러싼 정당한 자결권 행사든 아랑곳없이 서구의 이익과 미국에 위협이 되는 모든 무장투쟁에 이슬람 테러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대테러 전쟁이란 이름으로 중동의 많은 지역에서 미국이 깊숙이 개입한 전쟁이 벌어졌고, 하마스나 헤즈볼라 같은 집권정치 정당들도 테러 조직으로 분류되면서 국제법을 위반한 이스라엘에 맞서는 원초적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당했다. 문제는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같은 글로벌 테러 조직이었다. 그들의 잔혹함에 정작 더 큰 충격을 받은 곳은 이슬람 세계였다. 이슬람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끔찍한 인명살상은 지구촌 전체에 이슬람포비아 현상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었다. ‘이슬람=테러’라는 등식이 퍼져가면서 무슬림에 대한 공격과 차별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이슬람은 순식간에 테러의 종교로 낙인찍혔다.
그 결과 일방적인 대테러 전쟁으로 테러는 오히려 급증했다. 글로벌테러통계(GTD) 자료에 따르면 9·11 테러 이후 지구촌 테러는 그 이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전선이 따로 없는 현대 비대칭 전쟁의 특성상 고성능 폭탄을 사용해 도심의 테러 거점을 초토화하면서 평균 8~9명의 무고한 주변 민간인들이 함께 희생됐다고 지적한다. 한 사람의 테러분자는 제거되겠지만 동시에 가족을 잃은 몇 배의 잠재적 분노세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또 다른 테러 확산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비극적 현실이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계기로 이제 미국의 개입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다. 얼마간은 분노와 복수에 불타는 극렬분자에 의한 보복 테러가 기승을 부리겠지만, 무분별한 군사개입이 줄어든다면 지구촌은 적어도 테러로부터는 훨씬 안전한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냉전시대 미국은 자유진영을 지키는 든든한 보루였다. 그러나 1990년 탈냉전 이후 팍스아메리카 시대의 미국은 스스로 ‘선의 축’으로 자처하며 제어되지 않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분별하게 약자들의 삶에 개입했다. 석유라는 자신의 절대국익을 지키고자 했던 중동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두 차례 걸프전쟁,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이란과의 경제전쟁,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멘 내전 등 전쟁과 파괴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미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든 걸 미국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더라도 초강대국으로 그만큼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IS라는 특급 괴물을 만들어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시리아 내전에서는 알누스라나 IS 같은 급진 무장세력들과도 협력하다가 일방적으로 철군함으로써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독재정권과 후견인 러시아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 과정에서 2900만 인구 중에 1200만 명이 난민이 되는 초유의 비극을 초래하면서 유럽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1979년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략 전쟁 과정에서는 알카에다를 키우고 탈레반의 전신인 무자헤딘 조직을 지원했다. 9·11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은 알카에다 총수인 오사마 빈라덴의 신병인도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는 탈레반 정부를 곧바로 공격함으로써 들끓는 국내 여론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9·11 테러 실행범 19명 중에 무려 16명이 사우디인이었는데도, 그 나라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20년 후 미국은 완벽한 패배를 안고 다시 탈레반에 정권을 되돌려주고 상당한 첨단무기를 남겨둔 채 무책임하게 카불공항을 떠나갔다.
42년의 전쟁 끝에 폐허와 종족 간 상처만 남은 아프가니스탄의 재건과 안정화는 테러를 제어하는 가장 핵심적 글로벌 아젠다가 될 전망이다. 20년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쏟아부은 2600조원가량의 전비 5%만 투입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은 거뜬하게 자립 기반을 닦고 새로운 도약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테러를 줄이기 위해서는 테러 동기 부여를 무력화하는 전략과 함께 전쟁 피해자를 향한 생계 지원, 심리 치유 프로그램 가동, 일자리 창출 같은 소프트파워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