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또다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 박성인 부장판사는 사망한 강제노역 피해자 정씨의 자녀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8일 판결했다. 정씨는 생전에 “1940∼1942년 일본 이와테현의 제철소에 강제 동원됐다”고 진술했다. 유족은 이를 바탕으로 2019년 4월 일본제철에 2억여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정씨 유족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 권리는 가해자가 불법 행위를 한 날부터 10년, 피해자가 가해자가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손해를 입었는지 안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다만 강제징용은 손해배상 청구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던 점이 인정돼 이 사유가 해소된 시점부터 3년이 지나기 전까지 소송 청구 권리가 인정된다. 문제는 장애 사유 소멸 시점이다.
앞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은 일본제철을 상대로 2005년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심 패소 후 2012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2018년 재상고심에서 최종 승소했다. 박 부장판사는 “장애 사유가 2012년 파기환송을 기점으로 해소됐다”고 판단했다.
박 부장판사는 “파기환송 시 원심법원은 상고법원이 파기 이유로 제시한 사실, 법률상 판단에 통상 따른다”며 “원고의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 사유는 2012년 5월 24일 판결로 이미 해소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박 부장판사는 지난달 11일 미쓰비시매터리얼을 상대로 제기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같은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광주고법은 2018년 12월 또 다른 피해자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2018년 10월로 시효를 계산해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등 법원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유족 측 소송대리인은 “원고와 상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