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계좌 코인거래소 4곳으로 끝?…명줄 쥔 은행, 성실업체엔 기회줘야

입력 2021-09-08 18:02
수정 2021-09-09 01:39
빗썸과 코인원이 8일 농협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확인서를 받는 데 성공했다. 코빗도 이날 신한은행에서 실명계좌 확인서를 확보했다. 은행들이 내주는 이 확인서는 암호화폐거래소엔 ‘명줄’이 걸린 서류다. 사업자 신고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실명계좌가 없는 거래소는 이달 25일부터 코인마켓(암호화폐로 다른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시장) 등만 제한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문을 열어도 파리만 날릴 게 뻔하다.

은성수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으름장을 놨던 ‘거래소 전체 폐쇄 사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업비트에 이어 빗썸·코인원·코빗까지 사업자 신고의 9부 능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국내 코인 투자자의 90% 이상이 이들 4대 거래소를 이용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4대 거래소 외에 중위권 거래소 A와 B도 실명계좌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은행 이사회를 거쳐 행장 직인을 받는 절차가 남았다고 한다. 늦어도 다음주 초엔 결론이 날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금융정보법은 코인 거래소를 검증할 1차 책임을 은행에 맡겼다는 점에서 ‘기형적’이란 지적을 많이 받았다. 블록체인 산업에 정통한 변호사들은 “금융위가 책임질 일을 피하려고 작정하고 만든 장치가 바로 실명계좌”라고 말한다. 실제로 은행들은 당국 눈치만 보며 거래소를 애태웠다. 아예 문전박대를 당한 후발주자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전날 9개 군소 거래소가 ‘무책임한 금융당국’을 비난하는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

금융위가 파악한 암호화폐거래소는 63개. 상당수를 구조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원칙을 지킨 업체가 손해를 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혼탁했던 업계다. 하지만 손에 꼽을 정도의 극소수만 남기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최소한 수수료 경쟁에 불은 붙여야 하지 않을까. 사실 4대 거래소 자체가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든 구도였다. 2018년 ‘박상기의 난’ 이후 은행마다 실명계좌 발급을 전면 중단하면서 먼저 제휴를 맺어둔 4개 거래소가 선점 효과를 누린 것이다.

중소 거래소 중에는 블록체인 기술력을 탄탄하게 갖추고, 내부 통제와 보안에 열심히 투자한 업체들도 있다. 도장을 찍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은행장들에게 A와 B도 그런 평판을 듣는 스타트업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