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 어피너티컨소시엄이 주식 풋옵션 계약을 놓고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국제중재재판에서 지난 6일 최종 판정이 내려졌지만 여전히 양측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번 재판을 통해 2조원이 넘는 풋옵션 행사 대금을 받아내려던 어피너티의 뜻이 좌절됐기 때문에 일단 신 회장 측이 승기를 잡은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어피너티 측도 풋옵션이 유효하다고 인정받은 만큼 100% 승소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올해 초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어피너티·딜로이트안진 사건에 대해서도 중재재판부가 “자료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판단 자체를 보류한 만큼 이번 판정 결과가 향후 형사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번 국제중재재판에서 신 회장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광장은 7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사건은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재판부가 어피너티가 제시한 행사 가격(40만9000원·총 2조122억원)에 풋옵션 주식을 사들일 의무가 없다고 판정을 내림으로써 신 회장 승리로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반면 어피너티 측은 “중재재판부가 처음부터 풋옵션이 무효라는 신 회장 측 주장을 기각했고 신 회장 측이 가격평가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행위도 계약 위반으로 인정했다”며 “신 회장은 앞으로 풋옵션에 따른 의무를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신 회장이 자신의 평가가격을 제출하도록 유도해 풋옵션 행사를 마무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게 어피너티 측 고민이다. 이런 탓에 어피너티 측은 중재재판부에 직접 새로운 행사 가격을 결정해달라고 호소했으나 재판부는 “그럴 권한이 없다”고 일축했다.
중재재판부가 재판 비용 일부를 신 회장 측이 부담하도록 한 데 대해서도 양측은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어피너티 측은 “중재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신 회장 측을 ‘패소 측(losing party)’이라고 명시하고 중재비용의 100%와 변호사비용의 50%를 신 회장 측이 부담하도록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신 회장 측은 “패소 측이라는 표현은 중재재판부가 관련 중재 규정을 인용하면서 쓴 표현에 불과하다”며 “중재 재판은 유무죄를 가리는 형사 재판이 아닌 만큼 2조원이 넘는 금액을 지급해달라는 어피너티 측 청구가 기각된 경제적 실질이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올해 초 공인회계사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된 딜로이트안진·삼덕회계법인 사건도 어피너티엔 더욱 중요해졌다는 평가다. 중재재판부는 이에 대해 “딜로이트안진 등이 가격을 독립적으로 산출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한국 검찰의 기소 이후 재판 진행 상황 등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이에 대해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번 중재판정 결과가 국내 형사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오히려 유죄 확정판결이 나올 경우 풋옵션 행사와 관련한 새로운 법적 대응을 준비해야 하는 어피너티 측에 다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호기/김채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