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출범 후 새로 선임 또는 연임된 금융계 임원의 32%가 친(親)정부 인사나 고위관료 출신이라는 통계는 보는 눈을 의심케 한다. 민간 금융회사 임원 3명 중 1명이 경력과 전문성이 의심되는 ‘캠코더(선거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들이라는 얘기다. 금융 공기업만 보면 그 비중이 47%에 달한다. 그동안 금융산업 발전이나 글로벌 금융 허브를 논했던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던 셈이다.
그나마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연구기관인 금융경제연구소가 작년 말을 기준으로 만든 보고서가 이 정도다. 정권 임기 말 더욱 극성을 부리는 무차별적 꽂아넣기 인사 행태를 감안하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성장금융에서 20조원 규모 뉴딜펀드 사업을 총괄할 투자운용본부장에 황현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내정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예탁결제원 상임이사에도 친정부 인사(한유진 전 노무현재단 본부장)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금융 전문가가 아닌 데다 해당 회사는 이들을 위해 없던 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이뿐이 아니다. 앞서 한국조폐공사 금융결제원 메리츠금융지주 등에도 정부 인사들이 내려갔고, 이 중에는 재무제표도 읽지 못하는 ‘금융 문맹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니 야당에서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 두겠다던 게 ‘일자리 상황판’이 아니라 ‘낙하산 상황판’이었나”라는 비판이 나올 만도 하다.
물론 금융권 낙하산 인사가 문재인 정부만의 적폐는 아니다. 이전 정부들도 보수가 좋은 금융권 자리를 논공행상을 위한 ‘선거 전리품’쯤으로 여겼던 게 사실이다. 금융회사 경영진은 이런 낙하산 인사를 ‘바람막이용’으로 받아들였고, 노조는 노조대로 이들의 약점을 잡아 노사협상 등에 활용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 “앞으로 낙하산·보은 인사는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현실은 정확히 반대다. 더욱 견고해진 정권과 금융권-노조 3자 간 ‘암묵적 카르텔’ 속에 낙하산이 횡행하고, 그 결과 서울의 금융 경쟁력(금융센터지수)은 2015년 세계 6위에서 올해 16위로 10계단이나 미끄러졌다. 금융 경쟁력을 쌓는 데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허무는 것은 순간이다. 금융산업을 더 망치기 전에 낙하산 인사를 철회하고, 경쟁력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