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은 세상 어디에나 있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먼저 태양에서 엄청난 열에너지가 지구로 매일 전달된다. 지구 자전과 공전에 따라 낮과 밤, 계절 변화가 생기는 것도 결국 열에너지 이동으로 연결된다. 발전소, 공장 등 산업 필수시설뿐 아니라 차량, 인간이 사용하는 크고 작은 전자기기 등에서도 끊임없이 열이 나온다. 사람이 먹고 마시는 음식(화학 에너지)도 결국 체열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과학자들은 “모든 에너지는 종착역에서 열로 바뀐다”고 설명한다.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의 65%는 활용되지 못하고 열로 증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너지 저장장치(ESS) 기술이 부상하는 이유다. 폐열뿐 아니라 도처의 열을 전기로 바꾼다면 좋은 친환경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이를 ‘열전 기술’이라고 한다. 미국 화성 탐사선 등이 우주에서 쓰는 주 에너지가 열전 기술에서 나온다. 열전 기술은 소재 양 끝에 온도차가 발생하면 전하가 오가는 열전 효과를 기반으로 전기를 발생시킨다.
열전 발전 성능은 미세 전자제어기술(MEMS)로 구현한 열전 모듈이 좌우한다. 열전 모듈은 보통 2차원 반도체 필름 형태로 제작하는데, 성능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 모듈 내 온도차가 커야 열전 효과가 커지는데 필름 형태로는 온도차를 높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손재성, 채한기 UNIST(울산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은 3차원(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열전 모듈 내 온도차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3일 밝혔다.
연구팀은 상온에서 우수한 열전 성능을 갖는 비스무스(Bi)-텔루륨(Te)을 활용했다. 이를 3D프린팅 소재로 쓰기 위해 점탄성(힘을 가했을 때 액체와 고체의 성질을 동시에 내는 것)이 높은 잉크로 변환했다. 그다음 실리콘 기판 위에 이를 도포해 반도체 필라멘트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필라멘트 디자인을 최적화하면서 열전 모듈을 제작했다. 개발된 모듈 내 온도차는 82.9도였다. 연구팀 관계자는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마이크로미터(㎛) 크기 열전 모듈 중 가장 큰 온도차”라며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사업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 성과는 ‘네이처 일렉트로닉스’ 8월호 표지논문으로 선정됐다.
윤효재 고려대 화학과 교수는 홍병희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함께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에 ‘꿈의 신소재’ 그래핀을 넣어 열전 소재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즈’에 실었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절연체인 ‘포화 탄화수소’의 열전 성능을 높이는 방법을 수년간 연구해 왔다. 올초엔 포화 탄화수소에 산소 원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결합시키면 열전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포화 탄화수소 분자 박막을 그래핀 전극 위에서 제작하면 열전 효과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열전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연구 성과도 나왔다. 열전 소재는 보통 독성을 가진 납(Pb)이나 고가 희귀금속인 텔루륨 등을 쓴다. 정인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주석(Sn)과 셀레늄(Se)에 기반한 고성능 다결정 열전 소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팀 관계자는 “열에너지의 전기에너지 변환 효율이 20%로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은 이 연구 성과는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