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쑥한 정장 차림인 조성진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건반을 손으로 쓸어내리는 듯 하더니 이내 강하게 찍어눌렀다. 양손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듯 주선율을 연주했다. 발레리나가 무대에서 높이 튀어오르듯 손을 높이 쳐올리기도 했다. 박자는 자유로웠고, 음색은 청명했다.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의 '스케르초 2번'을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2015년 쇼팽콩쿠르를 치를 때와 연주 스타일이 달라졌습니다. 당시에는 경연이라는 상황에 맞춰 연주했었어요. 경직된 상태에서 피아노를 쳤죠. 긴장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훨씬 자유롭게 건반을 두드리죠."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6년 전에 비해 달라진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2번'과 '스케르초' 전곡(4곡)을 녹음해 음반으로 발매했다. 2015년 쇼팽콩쿠르 우승한 다음해 쇼팽 음반을 낸 지 5년만이다. 과거에는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과 발라드 등을 담았다.
조성진은 피아노협주곡 2번을 녹음하는 데에 뜸을 들였다. 첫 쇼팽 음반을 낸 후에 의도적으로 쇼팽의 레퍼토리를 피해왔던 것이다. 그는 "쇼팽 스페셜리스트로만 각인되는 걸 원치 않았다"며 "일부러 첫 음반을 낸 후 드뷔시, 리스트, 모차르트 등 다른 작곡가 작품을 녹음했다. 이제는 시간이 흘렀으니 쇼팽을 다시 다뤄도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쇼팽의 스케르초와 각별한 추억이 있다고도 했다. 2015년 쇼팽콩쿠르 준결승(세미 파이널)에서 연주했던 곡이 스케르초 2번이다.
"쇼팽의 스케르초는 그가 남긴 곡중에서 가장 무게감이 있어요. 1번부터 4번까지 모두 훌륭한 곡들입니다. 저에게는 개인적인 추억이 깃든 곡이죠.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 친 스케르초 2번을 쳤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정명훈 선생님 앞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신수정 교수님과도 인연을 맺게 해준 곡입니다."
첫 쇼팽음반을 녹음했던 악단과 그는 다시 조우했다.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지아난드레아 노세다와 함께 이번 음반을 제작했다. 올해 3월과 4월 두 번에 나눠 녹음했다. 현장성을 살리려 스태프들을 관객삼아 연주한 곡을 음반에 담았다. "저는 녹음실보다 무대를 더 선호하는 연주자입니다. 최대한 대면 공연처럼 들려주려 노력했어요. 이번 음반에서 스케르초 2번과 3번에 라이브 공연 녹음본을 썼어요."
조성진은 자신이 아직 피아니스트로서 성공했다고 자부하기 힘들다고도 했다. 배우고 익혀야 할 레퍼토리가 남아있어서다. 그는 "아직 배워가는 입장이다. 40세나 50세가 되어도 똑같을 것 같다"라며 "완성됐다고 느끼는 순간 발전할 동기가 없어져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눈은 이제 바로크 시대로 향한다. 이제껏 쳐본 적이 없는 작품을 다뤄보고 싶은 욕심에서다. "다음 음반에서는 바로크 시대 작품에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이 시기에 작품이 나왔지만 많이 연주되지 않은 헨델의 피아노 작품도 연주하고 싶습니다."
조성진은 음반 발매에 맞춰 1년만에 전국투어를 시작한다. 오는 4일 전주를 시작으로 대구(5일), 서울(7일), 인천(8일) 등 전국을 돌며 독주회를 연다. 16일 부산 공연을 마치고 18일 서울에서 추가 공연을 열 예정이다. 오는 18일 공연은 온라인을 통해 생중계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