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의 2년전 우려에도 여전한 금융권 '靑 낙하산 '[임도원의 BH 인사이드]

입력 2021-09-03 10:59
수정 2021-09-03 11:16
한국성장금융의 투자운용본부장에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선임됐다는 사실이 본지(9월3일자 A1·5면) 보도로 알려지면서 정치권과 금융권 안팎이 시끄럽습니다. 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본부장은 문재인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한국판 뉴딜펀드’ 사업을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관련 경력 및 자격증이 없는 황현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선임되자 낙하산 논란이 뜨겁습니다.

황 전 행정관은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출신입니다. 민주당 기획조정국장 등을 거쳐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전략기획팀장을 지냈습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옮겼고 조국 전 민정수석과 함께 약 2년간 호흡을 맞췄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9년 3월 국내 은행들이 출자해 설립된 구조조정 전문기업인 연합자산관리(유암코) 상임감사로 임명될 당시에도 구조조정 관련 경력이 전혀 없어 낙하산 논란이 일었습니다.

한국성장금융의 주요 주주인 산업은행과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조차 이번 인사에 대해 사전에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본지 기자에게 “이번 인사와 관련해 한국성장금융 측과 어떠한 사전 협의도 없었다”며 “인선 배경 등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사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청와대 대변인실에 이번 인사와 관련한 입장을 물어보니 "특별한 입장이 없다"는 짤막한 답변만이 왔습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관여한 것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금융권행은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우려를 나타냈을 정도로 일찍부터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윤 전 원장은 재임 당시인 2019년 3월 기자간담회에서 “이른바 부적격자들이 금융회사로 오는 것에 대해 솔직히 관심을 갖고 보고 있다”며 “바람직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2기 청와대 비서진 개편 이후 전직 행정관들이 잇따라 금융사 및 금융유관기관 요직에 선임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습니다. 황현선 전 행정관의 유암코 상임감사행, 한정원 청와대 전 행정관의 메리츠금융지주 브랜드전략본부장(상무)행 등이 당시에 논란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금융권 경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뤄진 인사였습니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낙하산 논란'은 금융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 첫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지난 3월에는 조재희 전 국정과제비서관이 폴리텍대 이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반장식 전 일자리수석은 지난 2월 한국조폐공사 사장에, 문정인 전 외교안보특보는 지난 2월 세종연구소 이사장에 각각 취임했습니다. 문미옥 전 과학기술보좌관은 지난 1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이 됐습니다. 그보다 앞서 조현옥 전 인사수석은 독일 대사, 이상철 전 국가안보실 차장은 전쟁기념사업회장이 각각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내걸었습니다. 잇따른 낙하산 인사 논란은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지향점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문재인 정부 임기말에 어떤 낙하산이 또 어디서 펴질지 언론은 주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청에 '언론재갈법'이 필요한 또다른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