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한때 “코로나 백신 빨리 맞을 필요 없다”고 했다. 백신 안전성이 확인된 뒤 맞아도 된다는 주장이었지만, 백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기에 내놓은 억지 논리였다. 늦게나마 백신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백신 먼저 맞는 사람에게 거리두기와 인원 제한 등 방역규제를 줄여주는 ‘백신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 6월 시행하려던 백신 인센티브제는 시행 직후 확진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비수도권 지역으로 범위를 줄였다가 이마저 중단했다. 지난달 23일에는 백신 접종 완료자가 포함된 사적모임을 4명까지 허용했다. 대신 식당과 카페의 영업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줄였다.
그러자 자영업자들은 “백신 접종을 2차까지 마친 사람들이 주로 고령자여서 주된 경제활동인구인 30~40대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며 “영업시간이 한 시간 줄어드는 바람에 ‘백신 인센티브’가 아니라 ‘코로나 규제’가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백신 접종자를 포함해 따로 사는 가족 4인이 식당에서 외식하는 건 괜찮고, 집에서 밥을 먹으면 방역수칙에 위반되는 등의 웃지 못할 해프닝이 속출했다. 미국 캐나다 등 외국에서 접종을 마치고 귀국한 사람도 국내 접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센티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래저래 현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보다 훨씬 ‘큰 그림’의 방역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은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대상 연방 의료지원 프로그램) 선물카드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접종률이 1차 62%, 2차 52%로 한국(1차 57%, 2차 32%)보다 높은데도 이렇다.
접종률 70%를 넘긴 영국은 지난달 모든 방역 제한을 해제했고, 싱가포르는 최대 5인 모임과 500명 이상의 종교·문화행사까지 허용했다.
이와 달리 백신 수급난에 인센티브 정책마저 오락가락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영업자의 40%가 매출 절벽을 견디지 못해 폐업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지금 같은 통제 위주의 획일적인 지침에서는 ‘백신 우대’(인센티브)가 자칫 ‘저해 요소’(디스인센티브)로 전락할 수도 있다. 다가오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오늘 방역 기준을 바꾼다는데 이번에는 부디 합리적인 방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