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 열풍에 코벤펀드 인기…제로금리 CB 발행도 '봇물'

입력 2021-09-02 14:45
수정 2021-09-02 15:03

공모주 열풍에 코스닥벤처펀드가 인기를 끌자 제로금리 전환사채(CB) 발행이 늘어나고 있다. 코스닥벤처펀드가 벤처기업 신주나 메자닌(CB·BW 등)을 의무적으로 편입해야 하다 보니 수요가 늘어난 탓이다.

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발행된 CB는 총 6조6636억원어치다. 지난해 한 해 통틀어 발행된 CB(6조4150억원)보다 더 많았다. CB 중에서도 금리가 0%인 전환사채가 적지 않았다. 8월 CB(비상장·SPAC 제외)를 발행한 42곳 중 16곳(38%)이 표면·만기금리가 모두 0%였다. 지난해 같은달엔 30곳 중 7곳(23%)만 CB의 전환사채를 발행했으니 그 비율이 증가한 것이다.

CB는 만기 때까진 약속된 이자를 받다가 만기가 오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투자자에게 주식 전환 권리를 주는 대신 이자가 낮은 편이다. 채권을 발행하자니 신용등급이 낮거나, 대출을 받자니 금리가 높을 때 비교적 저렴한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또 당장 신주가 늘어나는 유상증자와 달리, 만기 전까진 신주가 늘지 않아 지분 희석을 피하려는 회사가 선호하기도 한다.

CB의 표면·만기금리가 모두 0%일 경우 회사에선 공짜로 돈을 조달하는 게 된다. 반대로 투자자는 만기 때 주가가 올라야만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꿔 이익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마저도 어려운 상황이 적지 않다. 콜옵션이 붙은 CB도 같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지난달 표면·만기금리가 0%로 발행됐던 CB 16개 중 13개에 콜옵션이 붙어있었다. 콜옵션은 발행사가 CB 만기 전에 투자자로부터 CB를 다시 사들일 수 있는 권리다. 제로금리에 콜옵션까지 붙어 있다면 투자자 입장에선 CB를 사 봐야 이자도 못 받고 만기때 주식으로 바꿔서 시세차익도 못 올리게 된다. 투자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이기 때문에 모든 주식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할 순 없으나, 발행금액의 50%까지도 행사가 가능한 콜옵션이 붙은 CB가 늘고 있다. 지난달 제로금리에 CB를 발행한 바이오톡스텍, 라파스, 와이제이엠게임즈 등 3사는 콜옵션 한도가 발행금액의 50%였다.

증권가에선 코스닥벤처펀드의 범람이 이같은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8월 말 코스닥벤처펀드의 순자산은 1년새 약 1.7배 증가한 1조4934억원이다. 코스닥벤처펀드는 공모주 물량의 30%를 우선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경쟁률에 지친 투자자들이 펀드를 통해 우회투자하면서 덩치가 커졌다. 이때 코스닥벤처펀드가 공모주를 우선배정 받으려면 펀드의 15%를 벤처기업 신주나 메자닌으로 채워야한다. 펀드규모가 작다면 공모주만 받아도 15%를 채울 수 있지만 펀드 크기가 커지면 커질 수록 메자닌을 채워야 하는 압박이 커진다. 제로금리에 콜옵션이 붙은 CB라도 울며겨자먹기로 사야만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스닥벤처펀드의 CB 수요가 증가하면서 일부 한계기업까지 이 수요에 편승해 CB를 발행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며 "실질적 자금수요에 따른 게 아닌 펀드 편입을 위한 가수요에 의한 CB 발행 증가는 시장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