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 "ESG 4법 반대…연기금 수익성 악화 우려" [마켓인사이트]

입력 2021-09-02 11:28
수정 2021-09-02 11:34
≪이 기사는 09월02일(11:19)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경제단체가 지난달 발의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4법'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발의한 ESG 4법은 국민연금법·국가재정법·조달사업법·공공기관운영법 등에 대한 개정안을 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코스닥협회 등 5개 경제단체는 "ESG 4법에 대한 경제계 공동 의견서를 소관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했다"고 2일 밝혔다.

지난달 초 이낙연 전 대표가 발의한 ESG 4법에는 국민연금 수익의 최대 증대 목적을 '재정의 장기적 안정 유지'에서 제도의 지속가능성 확보'로 바꾸고, '지속가능성을 위해 ESG를 고려해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들어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ESG를 고려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또 기금의 자산운용지침에 ESG 요소 고려사항을 추가하고, 지침 준수 여부를 평가토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포함됐다. 공공 조달 시 기업의 ESG 준수 여부 등의 반영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조달사업법 개정안, 공공기관의 ESG 경영활동 노력을 법정 의무화하고 실적 평가시 이를 반영하는 내용이 골자인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도 들어가 있다.

경제단체는 "최근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ESG만 앞세우면 비효율적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간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개정안의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기금의 관리·운용에 있어 ‘수익성’, 공공조달에 있어 ‘조달사업의 공정성과 효율성’, 공공기관 운영에 있어 ‘재무건전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 "두 과지 관점에서 우려를 제기하는데, 첫째는 ESG 고려 시 반드시 효율성 부분도 고려해 검토해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해당 개정안으로 인해 기금 운용과 거래처 선정 시 기업에게 ESG를 강요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계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문구를 추가하면서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수익성'이라는 목표가 퇴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정책적 고려로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다. 경제단체는 "글로벌 주요 연기금 사례에서도 법률에서의 기금 운용 목적은 오로지 ‘연금수급자의 이익’ 및 ‘최대 수익의 달성’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과 함께 글로벌 5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ABP(네덜란드), CPP(캐나다), GPFG(노르웨이), GPIF(일본) 등에서는 기금 운용 목표를 '연금 수급자의 최대 이익, 수익 증대' 등으로 정하고 있다. 주주행동주의에 적극적인 미국 캘퍼스도 수급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ESG 투자에 적극적인 블랙록 역시 '수익 향상'을 목표로 삼고 있다.

5개 경제단체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신중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제단체는 "ESG와 관련해 국제적으로 통일된 공시, 평가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기금에 대해 ESG 요소의 고려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은 성급하다"며 "기금 운용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기업들을 자의적으로 평가하는 부작용이 발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ESG를 통한 지속가능성은 일반 회사의 경영 전략 측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에는 적용될 수 없다"며 "확고한 잣대 없이 법률적으로 애매한 용어를 법제화한다는 것은 결국 연기금의 목표를 없애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 불필요하게 비용이 낭비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양이원영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탄소인지 제도'가 포함된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발의된 이후 기획재정위원회 검토보고서에서 '정확한 측정이 곤란하고 이를 위한 행정비용이 상당하다'는 의견이 나온 바 있다.

국민연금의 고갈 시점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2018년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30년 연간 연금 지급액이 기금운용수익을 제외한 보험료 수입을 넘어서는 변화에 맞닥뜨리게 된다. 2041년에는 기금운용수익을 합쳐도 기금 감소를 막지 못하는 '기금 감소기'가 도래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2054년이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라고 설명했다.

경제단체는 조달사업법과 공공기관운영법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달사업법에 대해서는 "ESG에 대한 정보 공개나 평가 기준이 불분명함에도 ESG 요소를 고려하도록 의무화한다면 평가 기준의 객관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며 "대기업보다 ESG 경영 여력이 부족한 중견·중소기업의 공공조달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공공기관운영법에 대해서도 공공기관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단체는 "이미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사회적 가치를 상당히 고려하고 있다"며 "그 결과 공기업의 순이익은 지난해 적자전환되면서 6000억원의 손실을 냈고 397조원에 이르는 부채 규모를 기록했다"고 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공공기관 경영평가 지표는 총 100점 중 사회적 가치 지표가 24점을 차지한다. 재무 성과 지표는 5점 수준이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