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HMM을 비롯한 국내외 23개 해운업체의 운임 공동행위(담합)를 제재하려 하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해운업체 측에선 출혈경쟁이 심한 해운업계의 특성상 공동행위가 불가피하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공동행위가 합법인 만큼 공정위가 제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해운업체들이 법에서 규정한 공동행위의 요건과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을 통한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공정위의 제재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해운업계 "공동행위는 합법"공정위는 국내 12개 선사와 해외 11개 선사가 2003년부터 2018년까지 15년간 한국~동남아 노선 운임을 두고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다며 지난 5월 해운업체 측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검찰의 공소장 역할을 하는 공정위의 심사보고서엔 해운업체의 운임 담합행위에 대해 총 80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제재 절차에 착수하자 해운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해운업계의 운임 공동행위는 해운법 제29조로 보장돼있어 위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담합규제의 예외로 인정해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유엔은 1974년 공포한 '유엔 정기선 헌장'을 통해 해운업계의 공동행위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공동행위 없이 해운업체 사이의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면 자금력을 갖춘 거대 선사가 시장을 장악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소비자 후생이 더 감소한다는 해운업계의 주장을 유엔이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 역시 유엔 헌장의 취지를 인정하고 1978년 정기선사의 공동행위를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해운법을 개정했다. 공정위가 해운업체의 답합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 적용하기로 한 공정거래법은 그 이후인 1980년에 처음 제정됐다.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해운공동행위는 지난 40여년 동안 해운법에 따라 허용돼왔다"며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해운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공정위 "허용 담합도 절차 지켜야"해운업계가 해운법을 근거로 공동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대해 공정위는 "공정거래법과 해운법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펼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부당한 담합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은 제58조에서 예외를 인정하되 조건을 두고 있다.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해운법에 따른 해운업의 담합을 인정하되, 해운법에서 규정한 공동행위의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공정거래법으로 단죄해야 한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운업체들은 공동행위를 하기 전에 화주단체와 협의하고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공동행위를 신고해야 한다는 해운법 제29조의 하위 조항을 지키지 않았다"며 "해운법도 모든 담합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아닌 만큼 이번 사건은 공정거래법을 통한 제재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공정위 주장에 대해 해운업계 측에선 "해운법 위반 사항이 있다면 해운법에서 정한 과태료를 부과하면 될 일"이라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해운법이 정한 과태료는 상한액이 1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는 해운업체에 대한 규제의 실효성이 없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법 개정해 공정위 제재 막겠다는 與해운업체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제재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위성곤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해운업 공동행위를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할 수 없도록 명시한 해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개정안을 서둘러 통과시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를 저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다른 업종과 달리 해운업에 대해서만 공정거래법 예외 규정을 강화하면 앞으로 해운업계의 무분별한 담합 행위가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해운사에서 선장으로 일했던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완전히 배제하려면 미국처럼 해운업의 공동행위만을 전문적으로 심사하는 독립적 기구를 만들고 제재 수위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법을 개정해 실제로 공정위의 제재를 무력화하면 소급입법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과거의 위법 행위를 추후 개정된 법률로 처벌하면 안 된다는 '소급입법 금지' 원칙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