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삶과 예술의 일심동체, 배드보스(BADBOSS)

입력 2021-09-02 19:30
수정 2021-09-02 20:29


[라이프팀] 대중음악 작곡가이자 드라마 음악감독, 그리고 EDM 뮤지션까지 다양한 음악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배드보스는 지난 2021년 부터 그림을 시작, 9개월만에 첫 개인전을 열어 주위를 놀라게 한것도 모자라 데뷔 개인전에서 작품가 2천만원, 그리고 전액 기부라는 과감한 행보를 보인 뮤지션이자 신인 팝아티스트다

그 외에도 방송제작, 공연기획, 해외 아티스트 런칭사업 등 문화기획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해 대중문화예술 시장에서 팔방 미인으로 통하는 배드보스를 만났다.

<i>bnt와 첫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어떤지</i>

주변 연예인 동료들의 bnt 인터뷰를 본 적은 있지만 내가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뭔가 얼떨떨하지만 기분이 좋다.

<i>음악과 미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예술가로서 남다른 재능을 보여준다. 배드보스(BADBOSS)에 대해 소개해 달라.</i>

남다른 재능이랄 것도 없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동양화가로 활동하셨던 큰아버지에게 달마도와 사군자를 배웠다. 이후 중학교 때부터는 음악에 빠졌고 이후 음대에 진학하여 작곡을 전공했다. 현재는 대중음악 작곡가, 음악감독, EDM 아티스트로 활동을 하고 있다.





<i>배드보스(BADBOSS) 의미는 무엇인가</i>

배드보스의 배드는 슬랭어로 ‘아주 멋진’, ‘겁나게 멋진’의 뜻을 가지고 있다. Badass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20대 어린 나이 힙합에 심취했을 때 지은 작곡가 활동명이다. 다른 의미로는 스스로 낮추는 겸손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원래는 굿보스로 지을려고 했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어르신이 ‘자화 자찬을 하면 안된다. 자기 보고 좋다는 놈치고 좋은놈 없고 자기 보고 나쁜놈이라고 하는놈 치고 나쁜놈 못봤다’라는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이름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조폭인줄 알고 겁을 먹고 오는 경우도 있는데 막상 나를 만나면 그런 생각은 안들 것이다.<i>자신의 이름을 딴 배드보스 컴퍼니라는 회사에 대해서 궁금하다.</i>

2003년에 회사를 설립해 올해 18년이 됐다. 어린 나이에 패기와 열정만 있으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쉽지 않더라. 가진 능력이 작곡을 하는 능력 밖에 없어서 그 당시에는 좋은 곡만 쓰면 아티스트가 성공하는 줄 알았다. 최고의 회사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 쳤지만 몇 년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에는 각종 방송과 해외 활동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 운영자금이 부족해 주변 분들의 도움도 받고 운영하던 아카데미에서 번돈을 쏟아부으면서 회사를 운영했다. 거짓말처럼 10년이 되니까 조금씩 수익도 생기고 주변에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록밴드 스틸하트와 전속계약을 해 MBC복면가왕에 ’쉬즈곤‘을 선보이기도 하고 2017년에는 미국 보이그룹 EXP EDITION을 ‘너목보’로 데뷔시켜 이슈를 만들었다.

2018년에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보컬리스트인 폴포츠와 계약해 불후의 명곡과 복면가왕 등 해외 아티스트 런칭사업을 왕성하게 하며 국민들에게 좋은 대중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현재는 방송 외주제작사와 언론사까지도 자체 운영하는 기업으로 발전했다.





<i>올해부터는 팝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어떤 계기로 미술계에 들어서게 되었나?</i>

지난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한국은 물론 전세계가 경제적인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의 대중문화예술 시장도 큰 침체기가 오면서 내가 운영하던 회사 역시 피해갈수가 없었다. 예정돼 있었던 공연과 콘서트, 방송 제작 스케줄이 연이어 무산되면서 회사가 큰 타격을 입고 많은 일이 없어졌다. 원하든 원치 않든 여유로워진 시간을 갖게 되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생겼고 평소 해보고 싶었던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림을 시작하게 됐다.

<i>지난 6월에는 팝아티스트로서 피카디리 국제미술관에서 첫 개인 전시회를 개최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i>

혼자서 그림을 끄적이면서 9개월 동안 38점의 그림을 그렸다. 어느날 친구인 낸시랭이 놀러와 나의 그림을 보고는 소질이 있으니 계속 그려보라고 말해줬다. 취미처럼 스쳐 지나갈수도 있었는데 유명 팝아티스트인 친구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첫 개인전은 나에게 코로나로 인해 우울했던 지난날을 버텨온 에너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i>이번 전시회에서 팝아트 달마도를 비롯해 미술사 이야기, 우리 이웃의 자화상, 반려동물이야기 등을 담아낸 작품들을 통해 특유의 위트와 해학을 보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작품을 소개해달라.</i>

미국 팝아트 거장 앤디워홀의 32개의 캠벨수프를 오마주한 ’30개의 리챔‘과 빈센트 반고흐와 폴 고갱을 팝아트한 ’18세가 어느 두 화가’ 그리고 한국에서 최초로 팝아트화한 달마도가 있다. 38점의 작품중에서도 위 세 작품이 나의 첫 데뷔 개인전에서 가장 핫한 반응을 보였다.

<i>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한 팝아트 작품인 '30개의 리챔'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i>

내가 존경하는 앤디 워홀은 20년동안 매일같이 점심때 캠벨 수프와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사람이 어찌 같은 음식을 20년동안 먹을 수 있는지 의문이였다. 훗날 그가 그린 캠벨 수프는 그의 대표 작품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3개월동안 점심때마다 리챔과 햇반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건 마치 앤디워홀의 캠벨 수프의 상황과 같은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나의 일상적인 모습에 불과했지만 여튼 묘하게 그의 삶과 나의 삶이 겹쳐 보여며 흥미를 느껴 32개의 캠벨 수프를 오마주한 30개의 리챔을 기획하게 되었다. 단순한 일상의 발견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팝아트로 만들어질 줄은 몰랐다.





<i>전시 작품들을 기증하기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작품들이 기증됐는지.</i>

개인전 초반에 동원 F&B에서 미술관을 찾아 리챔 작품을 실제로 보셨다. 이후 판매와 함께 동원 본사에 작품이 들어갔고, 그림의 판매 수익금은 난치병 어린이 수술비와 사회복지단체에 전액 기부했다. 이 시기 불교신문과도 인터뷰도 했었는데 신문을 보시고는 여럿 스님분들이 찾아오셨다. 명품 옷을 입고 있는 달마를 처음 보셨는지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셨다. 소장을 원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첫 데뷔전을 한 나에게 오히려 더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동원 F&B, 통도사, 봉은사, 조계사, 가평군청, 한국경제Bnt, NGO 단체 굿피플이 나의 팝아트를 소장하고 있다.

<i>첫 개인전에 전시했던 팝아트 작품을 기증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i>

앞서 이야기를 했듯이 나는 원래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큰 관심을 받게 된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영광이라고 생각을 한다. 작품비를 전액 기부한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면 나도 사회에 어느정도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나의 팝아트를 소장하고 싶다는 연락이 가끔 온다. 좋은곳이라고 생각된다면 얼마든지 기증을 할 생각이 있다.

<i>배드보스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거나 깊은 관심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작가가 있나.</i>

앤디워홀과 로이리히텐슈타인,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거장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에서 최근에 열린 앤디워홀과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를 다녀왔다. 아직 미술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유튜브와 전시장을 다니면서 많은 공부를 한다. 어찌보면 접하는 미술가마다 크고 작은 영향을 다 받는 것 같다.

<i>준비 중인 전시, 행사 등 향후 배드보스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소개해 달라,</i>

미술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나의 정체성은 음악이다. 코로나가 없어지면 새 앨범으로 공연과 해외활동을 해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 OST도 계속 대중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그림도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라 다음 전시를 통해서도 대중과의 만남을 이어나갈 것이다.

<i>배드보스의 예술관과 삶의 가치관은 무엇인가.</i>

과하지 않고 꾸밈없는, 자연스러운 예술 활동을 해 나가려고 한다. 어릴 때는 뭔가 보여주기 위한 예술을 했다. 뭔가 내면의 결핍이 많았던 모양이다. 억지스럽지 않고 애쓰지 않는 예술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나의 예술관과 가치관은 큰 차이가 없는거 같다. 어차피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니까<i>앞으로 문화사업에 대한 사명감과 목표가 클 것 같다.</i>

음악과 함께 대중문화기획자로서 18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좋은 문화 콘텐츠를 대중들에게 선보일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현재 크고 작은 활동의 제한은 있지만 그간 해 왔던것처럼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때마다 기록해 두며 좋은 콘텐츠 기획을하고 있다. 대중을 상대로 문화 콘텐츠를 선보인다는 것은 사명감과 책임이 뒤 따른다. 한국의 대중문화 기획자라면 같은 생각을 늘 가지고 있을 것이다.앞으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좋은 문화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다.

(사진: 박정환 포토그래퍼)

bnt뉴스 기사제보 life@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