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맨 뒤에 철수한 사단장

입력 2021-09-01 17:32
수정 2021-09-02 00:12
베트남전 영화 ‘위 워 솔저스’의 실제 주인공 할 무어 미군 중령은 1965년 작전 투입 직전, 장병들에게 이렇게 연설했다. “내가 맨 먼저 적진을 밟고, 맨 나중에 나오겠다. 단 한 명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 우리는 죽어서든 살아서든, 다 같이 (고국에) 돌아갈 것이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그제 세계로 전송돼 큰 관심을 모았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작전을 완료하고 맨 끝에 수송기에 오른 크리스토퍼 도너휴 미 공수사단장(소장) 모습이었다. 녹색 발광 사진만큼이나 장군의 손에 쥔 개인화기와 군장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옛 소련 시절이던 1988년, 아프간 주둔 소련군이 철수할 때도 맨 마지막에 아무다리야강을 건넌 것은 보리스 그로모프 상장(上將)이었다. 그 역시 “내 뒤에 단 한 명의 소련 병사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사령관의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 그것을 의무이자 명예로 아는 군(軍) 전통이 강군을 만들었을 것이다. 군인을 높게 예우하는 사회문화도 한몫했다. 며칠 전 아프간 자폭 테러로 숨진 미군 13명의 유해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고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49분간 일어서 전사자들을 기렸다. 미 전역서 열린 전사자들을 위한 마지막 맥주 한 잔 퍼포먼스도 감동적이었다. 미국은 평소 야구장 등에서 전쟁포로·실종자를 위한 좌석을 예우 차원에서 비워두는 나라다.

군은 이런 데서 사기를 얻고, 사기가 높으면 기강은 스스로 잡힌다. 대북한 및 기지 경계 실패, 빈발하는 부대 내 성폭력, 청와대 행정관에 불려다니는 군 수장, 백신 없이 전개하는 해외작전 등 한국군의 온갖 기강 해이는 분명 사기 부족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 북한과 최대한 충돌하지 않는 것을 교전수칙으로 삼고, 학교 담임교사처럼 병사들을 잘 관리하는 부대장을 높게 평가하고, 천안함 등 순국 장병을 끊임없이 폄훼하는 시도에 군 사기가 올라갈 리 없다. 장성·장교·부사관·병사 간 현격한 차별과 권위주의가 사기를 갉아먹기도 한다.

우리 군도 일조점호 때마다 복무신조를 외친다. 그런데 미 보병의 복무신조는 보다 치열하고 진지하다. ‘나는 굶주림, 공포, 피로, 낮은 가능성에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정신적으로 굳건하고, 체력적으로 강하며, 도덕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이다. 윤리·도덕적 자신감이 강한 군대를 만든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