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아파트에서 올해 말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이사를 예정하고 있는 윤모 씨(36)는 최근 집주인에게 퇴거 일정을 앞당기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연달아 나오는 대출 축소 뉴스를 보고 불안해져서다.
윤 씨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계속 조인다고 하니 불안해서 연말까지 기다리기 힘들었다”며 “안그래도 전세 시세가 많이 올라 3억원 정도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대출이 더 막히기 전에 전세자금대출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도 전셋집이나 내 집 마련을 계획하는 경우 연말로 갈수록 대출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커 미리 신용대출을 받거나 계약 일정을 앞당겨 전세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의 전방위 ‘대출 조이기’에 은행권 대출 중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패닉 대출’이 이어지고 있다. 당국은 확산 가능성이 낮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주담대나 전세대출은 물론 신용대출 등 대출을 미리 당겨 받으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1일 서초·송파·동작구 등 서울지역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임대차 만료를 앞둔 많은 세입자들이 연말이 오기 전 서둘러 새 계약을 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급증세를 잡기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자 일부 은행들이 서둘러 대출 중단 조치에 나서고 있어서다.
NH농협은행이 오는 11월 말까지 부동산담보대출 취급을 전면 중단한 가운데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농협중앙회도 일부 대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은행들은 신용대출과 마이너스대출 한도도 크게 줄이고 있다. NH농협은행, 하나은행은 이미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의 2배’에서 ‘연소득’에서 낮췄으며 KB국민, 신한, 우리은행은 이달 중 시행할 예정이다. 인터넷 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도 신용 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축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은행 현장에선 미리 대출을 일으키는 가수요가 몰리고 있다. 대출 절벽이 더 가팔라지기 전에 대출을 받아두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전날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에서는 가계대출 잔액이 698조1109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보다 2조8028억원 늘었다. 가계대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492조7901억원으로 한달 전보다 3조2064억원 증가했다.
최근 아파트 매매 계약을 하고 내년 초 잔금 납부를 앞두고 있는 30대 직장인 박모 씨도 최근 대출 중단 뉴스를 보고 집주인과 상의해 잔금 일정을 이달 말로 당겼다. 주담대 대출을 잔금을 지급하기로 한 날부터 최대 한 달 전에 은행 대출 승인을 미리 받아놓을 수 있다고 해서다. 물론 입주 일정은 기존에 계약했던 1월이다.
박 씨는 “돈을 미리 지급하고 몇 달 동안은 입주를 할 수 없지만 내년 1월 잔금을 앞두고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너무 컸다”며 “잔금 일정을 앞당겼지만 이미 주거래 은행에선 대출 불가 소식을 받아 몇군데 은행을 전전한 끝에 대출을 진행하기로 했다. 은행 영업점에서도 '언제 중단될지 모르니 대출 신청 시기를 앞당기라'고 조언하더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