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7월 초부터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밝혔다. 미·북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우선순위에서 사실상 배제한 상황에서 북한이 ‘영변 카드’를 내세워 미국을 압박하고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IAEA는 지난 27일 발간한 북핵 관련 9월 연례 이사회 보고서에서 “2021년 7월 초부터 냉각수 방출을 포함해 영변 핵시설 내 5㎿ 원자로 가동과 일치하는 정황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5㎿ 원자로는 북한의 핵무기 핵심 제조 시설이다. 여기서 나온 폐연료봉을 방사화학연구소에서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이 추출된다. IAEA는 2018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해당 원자로가 가동된 정황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IAEA뿐 아니라 미국 싱크탱크와 북한 전문 매체들은 수차례 영변 핵시설 재가동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갖고 있는 카드가 ‘핵’ ‘미사일’ ‘대남도발’인데 핵실험은 판을 완전히 깨는 것”이라며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몇 안 되는 카드로 영변 재가동을 꺼내든 것”이라고 말했다.
군 출신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국회 국방위원회)도 “어차피 늦어도 내년엔 (비핵화 및 제재 완화) 협상이 시작될 텐데 외교적 레버리지를 높이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며 “핵무기보다 5~10배 폭발력이 큰 2세대 핵탄두인 증폭핵폭탄에 들어갈 재료(트리티움)를 확보하기 위해 원자로를 가동하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3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성 김 대북특별대표와 만난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영변 핵시설 재가동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전날 노 본부장은 “일단 가능한 여러 분야에서 북한과의 인도적 협력이 가능하도록 패키지를 만들고자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식수나 코로나19 방역 등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앞세워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내 정치권에선 대선 정국을 맞아 ‘전술핵’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홍준표·유승민·안상수 등 국민의힘 대선주자들과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의원 등이 북한의 핵도발을 견제하기 위해 한반도 내 미국 전술핵무기 재배치(1991년 철수)를 주장하고 있어서다. 홍 의원은 최근 개인 SNS에 “러시아의 핵미사일 확대 배치에 독일이 핵개발 의지를 내세웠고 미국에 강력 항의한 결과 유럽 나토 5개국에 전술핵이 재배치됐다”고 강조했다.
여권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안보 상황을 악용해 표를 얻으려는 위험천만한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전술핵 도입은 북한 비핵화의 명분을 약화시킨다”며 “또 최종 핵사용 결정권이 미국에 있는 전술핵이 한반도에 배치되면 진짜 한반도의 전쟁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