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상의 글로벌워치]유전자가위 관심 '폭증'…'러브콜' 잇따라

입력 2021-08-30 16:20
수정 2021-09-01 07:08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한 유전자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람에서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한 연구결과가 나오면서다. 유전자치료제를 바라보는 글로벌 투자업계의 시각도 바뀌었다. 유전자 편집 기술로 치료제를 개발하는 업체들에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인체에서 첫 안전성·효능 확인
지난 6월 글로벌 제약사 리제네론과 신약벤처 인텔리아테라퓨틱스는 유전자 편집 치료제 ‘NTLA-2001’에 대한 임상 1상의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크리스퍼 카스9(CRISPR/Cas9)' 치료제가 사람 생체 내(in vivo)에서 유전자를 직접 편집해 효능을 보인 세계 첫 결과다. 인텔리아 측은 “임상에 투여한 환자들에게서 심각한 부작용이 관찰되지 않았으며 투여량에 비례해 병증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의 양이 감소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NTLA-2001의 적응증은 희귀 유전병인 유전성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증이다. ‘TTR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 때문에 간에서 비정상적으로 생성되는 TTR 단백질이 신경계나 심장을 손상시켜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 질환의 국내 유병률은 10만명 중 0.5~3.5명꼴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워낙 희귀질환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

임상 1상에는 환자 6명이 참여했다. 투약군을 둘로 나눠 몸무게 1kg당 3명에겐 0.1㎎을, 나머지에겐 0.3㎎을 투여했다. 투약 효과는 장기 손상의 원인인 TTR 단백질 양의 변화로 평가했다.

그 결과 0.1㎎ 투약군은 혈청(혈액 중 혈구, 피브리노겐 등을 제외한 나머지 액체) 내 TTR단백질이 평균 52% 줄어들었으며, 0.3㎎ 투약군은 평균 87% 감소했다. 0.3㎎을 투여받은 환자 중 1명은 혈청내 TTR 단백질이 96% 감소하기도 했다. TTR단백질 양이 줄어들면 체내 주요 장기의 손상을 막거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이번 결과는 투여 후 28일째에 얻은 데이터를 분석해 얻었다. 회사 측은 NTLA-2001이 환자의 유전자에 개입해 장기간 작용하게끔 설계된 만큼 장기적인 안전성과 효능 확인을 위해 계속해서 환자들을 관찰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투여용량을 1㎎로 높인 다음 임상시험도 계획 중이다.

임상 발표 이후 인텔리아 테라퓨틱스의 주가는 꾸준한 우상향 중이다. 지난 6월 발표 당시 주당 88달러(6월 25일 기준, 시가총액 60억5400만달러)였던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 27일 기준 160달러(시가총액 117억5800만달러)로 2배 가까이 폭등했다.

유전자치료제 업체들 거액 투자금 빨아들여
유전자치료제 업체들에 대한 눈높이도 높아졌다. 투자업계나 글로벌 제약사가 유전자가위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에 보내는 ‘러브콜’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유전자치료제 기업 쉐이프 테라퓨틱스가 1억1200만달러(약 1304억원)를 기관투자자로부터 투자받았다. 이 업체는 DNA를 편집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와는 다르게 리보핵산(RNA)를 편집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사람의 디옥시리보핵산(DNA)을 영구적으로 변경하지 않고도 독성이 있는 단백질을 처리하는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중형급 제약사인 버텍스 파마슈티컬즈는 유전자 편집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과 공격적인 공동개발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크리스퍼 테라퓨틱스와 9억달러 규모의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지난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교수가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이다.

지난 24일엔 크리스퍼 유전자편집기술을 보유한 아버 테크놀로지가 버텍스 파마슈티컬즈와 12억달러(1조40040억원) 규모의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버텍스는 아버의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1형 당뇨, 겸형적혈구성 빈혈, 지중해 빈혈 등의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혁신은 계속 진행형
새로운 기술 혁신도 계속 되고 있다. 유전자편집 기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펭 장 박사가 2억2200만달러를 투자받아 설립한 빔테라퓨틱스의 핵심 기술은 RNA를 구성하는 4개 염기 A(아데닌), C(시토신), U(우라실), G(구아닌) 중 C를 U로 바꾸는 ‘레스큐(RESCUE) 기술’이다. 빔테라퓨틱스는 이 기술로 알츠하이머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빔테라퓨틱스는 레스큐를 이용해 알츠하이머 위험인자인 'APOE4'를 비병원성 변이인 'APOE2'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빔테라퓨틱스는 지난해 2월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이래 주가가 300% 이상 상승했다.

아예 태어나기 전 유전질환을 교정해버리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은 출생 전 헐러증후군이 있는 쥐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지난달 보고했다. 헐러 증후군은 점액다당을 분해하는 효소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장기 부종, 근육이상, 심장 질환 등의 증세로 조기 사망할 수 있는 유전병이다.

연구팀은 이 유전병이 단일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벡터)를 이용해 DNA 염기서열 중 A를 G로 전환할 수 있는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기’를 태아 상태의 쥐에 전달했다. 그 결과 생쥐의 출생 전 간과 심장의 세포가 교정되면서 대사 및 심장 기능이 개선됐다.

이우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