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금융감독원 징계 취소소송에서 승소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현직 금융회사 수장이 당국의 서슬 퍼런 처분에 반기를 든 것 자체가 드문 일이고, 1심이긴 하지만 법원이 손 회장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과거 징계받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자진 사퇴가 관행이었고, 법정 싸움도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처럼 퇴직 후 하는 게 보통이었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된 서울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금감원이 금융회사 징계를 남발한다는 그간 지적이 일리 있음을 확인시켜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법원은 대규모 원금 손실을 불러온 ‘해외금리 연계 DLF’라는 상품 선정과 판매 결정에서 투자자 보호와 관련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음은 인정했다. 그러나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규범 마련’ 의무(24조)는 이를 준수할 의무까지 규정하고 있지 않은데, 그 책임을 사후적으로 묻기 위해 무리하게 이용했다는 게 판결 요지다. 금감원의 징계 의욕 과잉이 문제고, 관련 입법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면 부실 감독 책임을 회피하려고 민간에 대한 징계를 과도하게 한다는 의심에 금감원도 항변하기 어렵게 됐다. 이미 감사원은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2조원대 금융사기로 규모가 커진 데 총체적인 금융감독 부실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상시검사를 소홀히 하고, 운용사 제출 자료만 보고 ‘문제 없다’ 판단하고, 제보 접수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안을 종결하는 등 부실 감독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했다. 그럼에도 손 회장을 포함한 10명의 은행·증권사 전·현직 CEO만 징계 제재 결의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라임·옵티머스 피해자에게 ‘원금 100% 반환’이란 포퓰리즘적 결정을 내린 것도 금감원의 습관적 면피 행정이란 지적이 많다.
이런 점에서 신임 정은보 원장이 이끄는 금감원은 비상한 각오로 쇄신에 나서야 한다. 시장 의견을 감독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것은 물론, 규제 완화와 투자자 보호가 충돌하지 않도록 세심한 감독을 펴야 할 것이다. “신호위반했다고 교통경찰이 다 책임질 순 없다”(윤석헌 전 원장)는 식의 조직 보호 논리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그게 금융소비자는 물론 금융회사로부터 신뢰받는 감독기구가 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