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한화클래식 2021의 대회장인 강원 춘천 제이드팰리스GC 10번홀(파4). 이곳에서의 ‘원 온’ 시도는 장타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티샷을 떨어뜨리는 타깃 지점을 거쳐 그린 센터까지의 공식 거리는 330야드. 티잉 에어리어에서 핀까지 직선 거리는 277야드다. 내리막 경사를 고려해도 공을 띄워 252야드를 보내야 하므로 조금만 짧아도 성인 키 높이의 벙커가 공을 삼킨다. 확신이 없으면 돌아가는 게 능사다.
29일 우승컵을 놓고 벌인 이다연(24)과 최혜진(22)의 진검승부도 이곳에서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이날 최종 라운드 10번홀에서 같은 조 홍지원(21)은 하이브리드로 끊어갔지만 이다연과 최혜진은 모두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다. 원 온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심산이었다. 이다연의 공은 살짝 벗어났지만 그린 바로 옆에 떨어졌다. 뒤에 친 최혜진의 티샷은 살짝 밀리더니 벙커에 잡혔다. 이다연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두 번째 샷을 그대로 홀 안에 넣어 ‘칩 인 이글’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10번홀 ‘칩 인 이글’ 앞세워 우승이다연이 새로운 ‘한화 퀸’에 등극했다. 그는 이날 보기 없이 이글 1개와 버디 4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쳤다. 최종합계 19언더파 269타를 적어내 2위 최혜진을 7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269타는 이 대회 72홀 최소타 신기록이다. 이다연은 “(10번홀에서) 안전하게 돌아가는 것도 고려했지만, 열심히 준비했고 계획한 대로 (원 온 시도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어프로치하기 좋은 곳에 공이 떨어져 이글로 연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다연은 이날 우승으로 2019년 한국여자오픈에 이어 메이저대회 2승째이자 투어 통산 6승째를 거뒀다. 2019년 12월 효성챔피언십 이후 약 20개월 만에 울린 승전고다. 상금 2억5200만원을 챙긴 그는 상금랭킹에서도 5위(4억7513만원)로 올라섰다. 이다연은 “내 플레이에만 집중한 게 우승으로 이어진 것 같다”며 “(여자양궁의) 안산 선수가 했던 ‘쫄지 말자’는 말이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다연은 전날 3라운드에서 버디 7개로 7언더파 65타를 쳐 대회 코스레코드 타이기록을 세웠다. 이 덕분에 최종 라운드에서 최혜진에게 3타 리드를 안고 출발했다. 최혜진이 시작과 함께 1번홀(파5)에서 버디로 추격했지만 이다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5번홀(파3)에서 티샷을 홀 옆 약 2m 지점에 붙여 버디로 응수한 뒤 최혜진이 버디를 추가한 8번홀(파4)에서도 똑같이 버디로 맞받아쳤다. 결국 최혜진이 9번홀(파4)에서 보기로 흔들렸고 이다연은 10번홀 이글에 이어 12번홀(파5), 18번홀(파5) 버디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최혜진, 준우승으로 ‘시즌 베스트’최혜진은 최종합계 12언더파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5월 교촌 허니 레이디스에 이어 넉 달 만에 챔피언 조에서 경기해 역전 우승의 기대감을 키웠지만, 이다연의 벽이 너무 높았다. 준우승은 최혜진이 올 시즌 거둔 최고 성적이다. 지난해 11월 시즌 마지막 대회였던 SK텔레콤·ADT캡스 챔피언십 우승을 끝으로 최혜진은 올해 우승 없이 두 차례 기록한 3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춘천=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