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인공지능(AI)이 안 들어가는 분야가 없는 것 같아. 지금이라도 AI 개발을 배워야 하나.”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으레 나오는 얘기다. 최근 AI ‘붐’에 관련 개발자들의 몸값이 점점 올라가면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실천하긴 쉽지 않다. 개발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다면 백지 상태부터 지식을 쌓아야 해서다. 그간 다듬은 커리어를 바꾸는 것도 큰 결정이다.
이같은 고민을 돕는게 기업별 사내 AI 교육 프로그램이다. 최근 AI를 적용할 곳이 점점 많아지면서 자체 AI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통신업계에선 KT가 직무 전환을 보장하는 사내 AI 교육프로그램 ‘미래 인재 육성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AI·클라우드 교육으로 비개발자를 개발자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이다. 나이, 직급, 전공, 현업 분야 등을 따지지 않고 6개월여간 전일 교육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직무를 바꾼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직장인 25년차, 행복해지고 싶었다”
박홍석 차장(51·사진)은 KT 미래인재 육성 프로젝트 2기에 네트워크 AI개발분야 최고령 학생으로 참여했다. 입사 25년차에 내린 결정이다. 미디어운용센터에서 KT의 AI 스피커 ‘기가지니’ 관련 업무를 하다가 AI 기술이 궁금해진 게 계기였다. 연구소 직원들이 서비스 협업을 위해 센터를 방문할 때마다 AI 관련 내용을 물어보곤 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는 한계를 느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더 근본적인 이유도 있었다. 박 차장은 “조금 생뚱맞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는데, 행복해지고 싶었다”고 했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던 차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한창 공부할 시기인 자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모범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의욕이 컸지만 50대 나이에 부담도 있었다. 젊은이들에 비해 첨단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늦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회사에서 주력 인재로 키울 나이는 이미 지났으니 교육 대상에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박 차장은 “지난 1월 입교식에서 구현모 KT 대표가 한 격려사가 마음에 깊게 남았다”며 “‘50대 참가자도 10여년 가량을 더 근무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신기술을 배워 활약할 수 있고, 은퇴한 후에도 교육기간 배운 것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교육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박 차장은 “공부를 하다보니 강사가 과제를 따로 내주지 않아도 독학할 것들이 계속 생기더라”며 “평일 퇴근 이후나 주말에도 AI 공부를 하곤 했다”고 했다. “AI 공부는 내 자신을 위한 투자이고, 이를 잘 해내면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 ‘윈윈’ 구조라 스스로 시간을 내기 쉬웠다”는 설명이다.
“과정이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하니까 가족들도 좋아했어요. ‘사람이 얼굴이 폈다, 밝아졌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아내도 자꾸 제가 ‘젊어지고 잘생겨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가족 분위기부터 달라지니 새로운 일에 나선 보람이 컸죠.”
박 차장은 교육 과정 수료 후 네트워크(NW)부문 AI 자동화개발 태스크포스(TF)로 자리를 옮겼다. 비정형데이터를 AI로 분석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는 “교육 과정 프로젝트 내용이 모두 실무 기반이라 회사가 이 분야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며 “서비스 의도를 이해하고, 내 분야의 도메인 지식을 더하면 비정형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5년 내에 취미인 바둑 관련 AI 프로그램을 만들 기량을 갖추고, 사외 AI 경진대회 최소 세 곳에서 상위 10% 이상 성적을 내는 것이다. 그는 “이 정도 개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사내 프로젝트에서도 좋은 기여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은퇴 후엔 AI 솔루션으로 조그마한 사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을 쌓고 싶다”고 했다. “유망 기술 일찍부터 익히고 싶었죠”
박정민 대리(26·사진)는 직무 만 3년차에 교육과정에 참여했다. 현장 네트워크(NW) 운용부서에서 일하던 그는 구현모 KT 대표 직속 미래가치추진실에서 바이오 AI 솔루션 개발을 맡고 있다.
그는 “네트워크 장애 예측 등 기존 업무에 AI를 접목하는 시도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AI 지식은 필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저연차에 직무를 바꾸는 것이 너무 이르거나 무모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AI 교육을 받지 않으면 기존 부서에 남아도 2~3년 뒤엔 AI 지식이 부족해 답답한 상황을 겪을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얘기다.
박 대리는 대학 시절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개발 관련해선 대학교 1학년때 C언어 기초지식을 배운게 전부다. 그는 “교육 프로그램이 기초 단계부터 시작하고, 강사나 선배 교육생들과도 연계가 잘 되어 있어 적응이 어렵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선배 교육생들이 ‘AI 코치’로 활동하면서 질문 답변 등을 지원했다. 박 대리가 속한 조는 교육생 세 명에 AI 코치 두 명이 붙었다. 기존 업무의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교육이 이뤄져 이해도 빨랐다.
그는 요즘 초음파 이미지 데이터를 분석해 악성 질환 여부를 판별하는 의료 AI 솔루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업무와 함께 의료분야 AI 모델 개발도 추가로 공부하고 있다. 박 대리는 “의료 AI 분야는 주요 성장산업이지만 진입장벽이 높고, 초보 개발자는 관심이 있어도 접근하기 힘든 분야”라며 “사내 프로그램 덕분에 유망 분야에 진입하게 돼 교육에 참여한 것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S 현장전문가, AI 개발자로
김형중 차장(55·사진)은 KT 미래인재 육성 프로젝트 2기에서 IT AI 개발 분야의 최고령 참여자였다. 1994년 입사한 그는 작년까지 수납지원센터에서 CS 운영을 맡았다. 지난해 KT 현장전문가 ‘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직무 방향을 바꿨다.
김 차장은 “기존 부서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기존 업무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회사가 추구하는 더 큰 방향에 동참하고 개인적으로도 경쟁력을 보유한 인재로 성장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기 교육생 중 적지 않은 나이에 도전해 성공적으로 교육을 이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감이 붙었다는 설명이다.
교육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는 AI 기반 추천시스템 프로젝트를 꼽았다. 그는 “추천 시스템의 고전인 콘텐츠 기반 필터링, 협업 필터링부터 최신 AI모델인 뉴럴CF까지 다양한 모델을 배우고 모델링을 수행했다”며 “이 과정에서 각기 다른 현업 부서에서 온 이들과 협업하며 서로 도메인 지식을 나누기도 했다”고 했다.
김 차장은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IT부문 AI 운영추진팀에서 장애 탐지 AI모델링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AI 중급 전문가 자격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백엔드 프로그래밍 관련 사내 온라인 교육도 받고 있다. 그는 “AI 중급 전문가로써 당당히 회사에 기여할 수 있어 뿌듯하다”며 “AI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자 역량도 키우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