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와 일본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사진) 공급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지난달 말레이시아의 봉쇄령 연장으로 업계 3위 다이요유덴 가동률이 뚝 떨어진 데 이어 업계 1위인 무라타제작소 일본 공장까지 셧다운(일시 가동중단)됐다. 코로나19가 국내 부품업체에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 2위인 삼성전기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작년부터 세 차례 가동 중단
26일(현지시간)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일본의 무라타는 이달 말까지 후쿠이현 에치젠시에 있는 생산시설을 셧다운하기로 했다. 이 회사 직원 4200명을 포함해 사업장을 출입한 7000여 명 중 98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다음주 감염 상황을 보고 (셧다운을) 연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후쿠이 공장은 무라타의 최대 MLCC 생산기지다. 이 회사 전체 MLCC 생산능력(월 1300억 개 수준)의 60%를 책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파급력이 지난달 말레이시아의 봉쇄령 연장으로 인한 MLCC 공급난 발생보다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세계 3위 업체 다이요가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이 업체의 월 생산능력은 550억 개로 무라타의 절반 수준이다.
무라타의 MLCC 생산라인 셧다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월에도 후쿠이 사업장에서 확진자 한 명이 나오자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당시 고객사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두 차례 기한을 연장하기도 했다. 올초에도 일본 후쿠시마 해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공장이 손상돼 가동을 멈췄다. 2년 전만 해도 40%에 달했던 무라타의 MLCC 점유율이 올 1분기 기준 34%까지 떨어진 배경이다. 삼성전기 수혜 기대
MLCC는 전자제품의 회로에 전류가 안정적으로 흐르게 도와주는 부품이다. 제품 두께는 머리카락 굵기(0.3㎜) 수준이고 가로가 0.4㎜, 세로가 0.2㎜에 불과해 흔히 쌀알에 비유된다. 5세대(5G) 이동통신망을 쓰는 스마트폰엔 1000개, 신형 전기차엔 1만3000개 정도의 MLCC가 들어간다. 최근엔 이 부품의 수요가 더 늘었다. 코로나19에 따른 ‘집콕 소비’로 전자제품 판매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전장화가 빨라지면서 차량용 MLCC 주문도 폭증했다. 가뜩이나 공급이 빠듯한 상황에서 무라타제작소 생산기지 셧다운이 장기화하고 있어 MLCC 수급난이 한층 더 심각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14주였던 주요 제조업체 MLCC 납품기간은 최근 25주까지 늘어났다. 가격도 오르는 추세다. 삼성전기는 반기보고서에서 상반기 MLCC 평균 거래가격이 2.1% 올랐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첨단제품만 놓고 보면 10~40%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만의 야교도 최근 MLCC 가격을 10~20% 인상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무라타의 아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고가 빠듯해진 전자제품과 자동차 제조사들이 다른 거래처를 물색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삼성전기가 혜택을 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세계 주요 MLCC 제조사 중 유일하게 코로나19로 인한 생산 차질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전기는 2019년 22%였던 시장점유율을 올 1분기 24%로 끌어올렸다. 중국 톈진 2공장 가동 효과가 나타나는 3분기부터는 점유율이 더 높아질 전망이다. 이 회사는 공급과잉 우려에도 불구하고 최근 톈진 2공장을 증설했다. 지난달 양산을 시작한 2공장의 생산능력은 1공장의 1.4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본의 코로나19 팬데믹은 사그라들지 않는 모양새다. 현지 공영방송 NHK 집계에 따르면 27일 오후 2시 기준 새로 확인된 확진자가 2만4950명에 달했다. 전날(2만4976명)에 이어 2만4000명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6일 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홋카이도, 미야기 등 8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에 추가로 긴급사태를 발령했다. 도쿄도와 오사카부 등 기존 13개 지역에 더해 총 21개 광역 지자체가 긴급사태에 들어갔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전국적으로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감염 확산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도쿄=정영효 특파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