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時習之면 不亦說好아(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에 참 많이 와 닿는 글귀가 아닐까 합니다.
배움의 중요성에 대해 한가지 더 얘기할까 합니다. 유대인에 관한 얘기입니다. 역사 속에서 유대인 만큼 탄압을 많이 받은 민족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수세기동안 명맥을 유지하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영향력을 키워왔습니다. 그 이유는 배움과 정보의 활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른 민족과 달리 어릴 때부터 글을 읽을 줄 알아 문맹률이 낮았고, 배움을 기도와 똑같은 행위로 간주해 평생 공부에 정진했기 때문입니다.
구성원 간 정보의 교류와 활용력도 뛰어났습니다. 유대인 랍비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커뮤니티 유대교 회당인 시너고그(Synagogue)간에 일상적으로 편지를 교환했습니다. 그 편지에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사정, 변화들이 자세히 기록돼 전달됐습니다. 배움이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게 만든 겁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지역 간 물가의 차이를 이용한 차익거래는 막대한 부의 축적을 가능케 해 유럽의 상업을 석권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서 복식부기가 출현한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부의 축적과 폐쇄성이 한편으론 민족탄압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민족과 달리 글을 읽을 줄 아는 개인 능력을 기반으로 배움을 통해 또한 지역간 정보교환을 통해 획득, 활용한 지식은 수세기동안 유대인 경쟁력의 원천이었던 것입니다.
계속된 배움, 정보의 활용, 변화에 대한 대응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쟁력의 원천입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투자는 필수
‘ESG, 메타버스, 포노사피엔스, Digital Transformation. 최근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단어들입니다. 경영계 최고의 화두인 만큼 기업들은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듯한 두려움에 빠르게 경영 최우선 과제로 삼고 너도 나도 기업경영에 적용하는 모습입니다.
급변하는 환경 변화에 대응해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업도 배워야 합니다. 기업의 배움은 조직구성원들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기업의 경우 그 배움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업활동에 활용, 적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은 인적, 물적 투자가 반드시 수반돼야 합니다.
최근 기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그 사례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신용평가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코로나19 영향이 컸던 2020년에 다소 주춤했던 인수합병, 분할, 투자, 매각 등의 경영활동이 2021년들어 다시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상반기 사례가 2020년을 웃돌았고, 2019년 수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M&A 활동에 적극적인 PEF 업계도, 기업 가치 평가를 수행하는 회계법인들도 최근 큰 활황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은 신용평가보고서에 신용등급의 상·하향 증가 가능성, 일명 KMI(Key Monitoring Indicators, 이하 KMI)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기업의 KM에는 ‘순차입금/EBITDA’ 지표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해당 지표가 영업현금창출능력 대비 재무부담 수준을 판단하고 비교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투자는 초기에 재무부담을 상승시키고, 그 효과는 장기에 걸쳐 나타납니다. 투자로 인한 재무부담은 현 시점에서 확실하지만, 투자효과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얘기죠. 만약 높아진 재무부담으로 신용등급이 하향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조달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해당투자의 성과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용등급을 유지 또는 상향시키고자 하는 기업의 경우 대규모 투자결정은 딜레마입니다.
그와 같은 이유로 일부 업체는 KMI지표에 집중한 나머지 ‘우리는 대규모 투자계획이 없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과연 신용평가 관점에서 적절한 대응일까요.
채권 투자자 입장에서는 일면 맞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투자는 일시에 재무부담을 증가시키는 반면, 향후 그로 인한 성과는 다양한 환경 변수로 인해 높은 불확실성에 놓이게 됩니다. 글로벌 경영환경 하에서 다양한 거시경제 변수의 변화나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입니다. 스마트폰이 끼친 세상의 변화를 생각해보십시오. 스마트폰이 출현한지 대략 10년 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말이죠.
코로나19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용평가사도 신용 전망을 통해 미래의 성과를 신용등급에 반영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불확실한 측면이 높은 향후 성과를 현 시점에 모두 반영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재무부담을 크게 증가시킨 투자결정에 대해 신용평가사는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도 생각해봅시다. 투자로 인한 좋은 성과는 잔여재산 청구권(Residual Claim)을 보유한 주주에게 대부분 혜택이 있는 것이지, 약정된 만기 안에 약정된 이자와 원금만을 수취할 수 있는 채권 투자자 입장에서는 큰 관심대상이 아닙니다. 추가적인 과실을 향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확실성, 즉 위험이 상승한 기업이 좋을 리 없습니다. 다시 말해 기존 채권 투자자 입장에서는 리스크 프리미엄을 더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다른 채권자의 출현이나, 채권투자시점 대비 높아진 위험수준이 더 걱정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는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지금과 같이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놓여 있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변화에 대응한 투자는 필수입니다. 현 시점의 신용등급에 기반한 사고는 단기적 대응일 뿐입니다. 투자는 기업의 생존 문제입니다. 변화하지 않고 투자하지 않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어렵고 단기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신용등급도 결국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하향되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택은 포기의 또 따른 이름이다’라는 말을 되새겨 봄 직 합니다. 신용평가사의 의견을 감안하되 투자로 인한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라는 단기적 사고에만 몰입하지 말고(포기하고) 계속적인 기업경쟁력 유지 내지는 확보라는 관점에서 필요하면 과감히 투자를 선택했으면 합니다.
포춘이 매출 기준으로 선정한 세계 10대 기업의 과거 10년 사이의 기업순위 변화를 살펴봐도 기업의 환경변화에 따른 대응과 투자가 왜 필요한 지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10대 기업이 2021년에도 유지된 기업 수는 4개사뿐입니다. 산업의 구성 면에서도 2011년에는 석유산업 관련 회사가 6개사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2021년에는 2개사로 줄고 대신 그 자리를 온라인 유통, 정보기술(IT), 건강(Health) 관련 기업이 차지했습니다.
그와 같은 변화 속에서도 1위는 여전히 월마트였습니다. 오프라인의 강자였던 월마트는 온라인 침투에 대응해 약 5000여개의 보유 점포를 온라인 물류 거점으로 전환하고 다수의 M&A도 추진했습니다. 변화와 투자를 통해 월마트는 세계 1위를 수년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점적 지위를 영원히 향유할 수 없다면, 현재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기존의 캐시카우가 창출하는 이익을 재원으로 미래사업에 투자하여 새로운 캐시카우를 찾아야 계속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은 반복돼야 합니다. 변화에 대한 대응과 투자라는 관점에서 네이버, 카카오의 현재 진행형 사례는 신용평가사 관점에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받아들여, 이를 회사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결국 투자해 성과를 창출하는 그런 기업에 신용평가사는 궁극적으로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시장과의 소통이 중요한 시대
신용평가 업계에 종사하며 수많은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로부터 연초에 종종 이런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올해 제 KPI에 신용등급 상향이 포함돼 있습니다.’ 상황상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나, CFO 혼자만의 노력으로 신용등급이 상향될 수는 없습니다.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CEO의 경영전략과 철학 하에 모든 구성원들이 노력한 결과물이 좋은 실적으로 나타날 때 신용등급이 상향될 수 있습니다. CFO도 구성원 중 한사람일 뿐입니다.
보다 적절한 CFO의 KPI는 ‘신용평가사를 포함한 투자자들과 소통 노력’이어야 합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왜 그런 투자를 하게 됐고 이런 이유로 투자 성공 가능성이 높으며, 우리는 그런 변화와 투자를 통해 계속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좋은 실적을 낼 것이다’라는 측면에서의 소통노력이 CFO의 중요한 목표가 돼야 합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관계 중심의 접근 보다는 실재성에 기반한 소통노력이 더 중요합니다.
개인과 기업의 경험이 중요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산업의 성장속도와 상황에 따라서는 여전히 경험은 중요한 자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환경변화의 속도와 내용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그 경험의 중요성은 과거에 비해 약해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변화를 읽고 배우고 노력하고 소통해야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계속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도, 기업도 모두 日新又日新하길 바랍니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한국신용평가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