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가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연계한 그린수소생산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10여 년 전부터 그린수소생산 기술력을 축적해온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이 주목받고 있다. 유성 RIST 원장(사진)은 “최근 백신이나 전력반도체 사태에서 보듯 돈이 있다고 기술이나 제품을 마음대로 사 올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며 수소생산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 원장은 “그린수소를 활용해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 시대를 연다면 이는 포항의 미래를 극적으로 전환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자 기술진보”라며 “원자력과 연계한 그린수소의 국내 생산은 우리나라의 탄소중립뿐만 아니라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RIST는 지난달 16일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 포스텍, 경상북도, 울진군과 고온수전해 기술개발 협약을 맺었다. 원자력과 연계한 고온수전해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RIST는 수전해 기술 경쟁력과 속도를 높이기 위해 올해 초 수소연구센터의 조직과 인력 장비를 대폭 확충했다. 박사급 12명이 근무하는 센터는 2025년 35명까지 인원을 늘려 다양한 수소연구를 집중할 계획이다.
▷수소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린수소생산과 고온수전해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 2040년 526만t 규모의 수소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추가로 2050년 수소환원제철 실현을 목표로 할 경우 포스코가 필요로 하는 그린수소는 연 350만t 규모에 달한다. 원자력과 연계한 고온수전해는 원자력에서 나오는 열과 전기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수소생산기술이다. 2050년께에는 해외 수입 수소와 동등한 수준의 비용으로 국내에서 직접 그린수소 생산이 가능하다. 고온수전해 기술은 고온의 스팀을 필요로 하는 대신, 다른 기술보다 전력 소모량이 30% 낮은 장점을 갖고 있다. 소형원자로나 원자력과 연계한 고온수전해가 유망한 이유다.”
▷RIST가 그동안 이룬 성과는.
“RIST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10여 년 이상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연구를 해오면서 기술력을 쌓아왔다. 150건 이상의 특허와 설비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축적된 연구를 바탕으로 2016년부터 수소사회 도래에 대비해 국가 과제를 활용한 고온수전해 기술 개발을 해왔다. 고온수전해 기술은 SOFC의 역반응으로 고온의 수증기와 전기를 공급해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고온수전해 해외기업의 기술력과 RIST의 수준은.
“대표 기업으로는 독일 선파이어와 미국 퓨얼셀에너지가 있다. RIST는 현재 고온수전해 4㎾급 스택 기술을 보유 중이다. 단일 스택의 수소생산량은 2.7㎏/일로 국내 최고다. 수소생산 효율은 34.6㎾h/㎏·H2로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한다. RIST는 이미 개발한 스택 기술을 기반으로 용량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전해 기술력 확보를 위한 과제는.
“그린수소 생산에 적합한 초고온가스로의 경우 시작 단계에 있는 기술로 상용화에 시간이 오래 걸릴 전망이다. 인허가를 위한 장기적인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 스택의 대량생산과 품질관리 기술을 통한 대용량화 기술이 중요하다. 해외에서도 개발경쟁이 치열하다. 상용화 수준인 1㎿급에는 300억원 규모의 개발비 투자가 필요하다.”
▷포스코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탄소환원제철에서 수소환원제철로 제철공정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내의 연간 CO2 배출량은 약 7억2000만t으로 이 가운데 철강업계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석탄을 이용한 탄소환원제철을 수소환원제철로 제철공정을 바꾼다면 제철산업을 이어나가면서 국가 탄소중립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수소환원제철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함께 수십조원의 설비투자도 필요하지만, 저가의 대량 수소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수소를 제조할 수 있지만 여건상 수입 수소 대비 가격경쟁력을 갖기는 힘들다. 또 연간 수백만t의 제철용 수소를 국내 재생에너지만으로 생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원자력을 활용하는 고온수전해는 수입 수소보다 가격경쟁력이 높은 유망한 수소확보 대안이다.”
포항=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