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6일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연 0.75%로 올리면서 15개월 만에 ‘돈줄 죄기’로 돌아섰다.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연말이나 내년이 될 것이라던 관측에 비해 한은이 다소 빠르게 정책 변경에 나섰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이 2023년 하반기께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과 비교하면 상당히 앞서나가는 것이다. 이는 우리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면서 한은이 청와대·정부와 함께 ‘집값 잡기’에 동참한 것이란 분석이 많다. 한은은 향후 추가 인상을 강하게 시사했다.가계대출 중단과 동시 금리 인상한은은 지난해 코로나19가 경제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초유의 초저금리를 택했다. 지난해 3월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연 0.75%로 0.5%포인트 내렸다. 지난해 5월 사상 최저인 연 0.5%로 추가 인하했다. 한국에서 연 0.5%의 금리는 사실상 ‘제로금리’나 다름없다.
한은은 이번 금리 인상을 통해 초저금리 실험을 15개월 만에 마쳤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미미할 것이란 예측이 바탕이 됐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델타 변이 확산이 한국 경제의 기조적 회복세를 저해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성장률을 바꾸지 않고 4%로 제시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종전 2.5%에서 2.8%로 상향 조정했다. 오히려 물가 오름세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봤다.
한은은 가계 빚과 지속적인 집값 상승에 주목했다. 지난 6월 말 가계부채(가계신용)는 1805조9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뭉칫돈이 흘러든 부동산은 과열 양상을 보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7월 평균 매매가격은 전달보다 1억8117만원 오른 11억930만원으로 집계됐다. 사상 처음 11억원을 넘어선 것이다.
한은이 이르면 4분기께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관측을 깨고 8월 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청와대와 정부가 집값 및 가계부채를 잡는 데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사인을 줬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대국민 부동산 담화문’을 발표하며 “금리 인상과 유동성 관리 가능성 등 대내외적 환경 등을 판단해볼 때 주택 가격은 일정 부분 조정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23일 가계부채와 관련해 “통화정책 정상화 경로에 따라 어느 정도 조정이 선제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상당한 금융 불안정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집값 잡기에 실패한 문재인 정부가 더 이상 쓸 카드가 사라지자 금리 인상에 기대는 모습이다.
한은은 지난 5월부터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기준금리 정상화(인상)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청와대와 기재부가 금리 인상 필요성을 수용한 데다 금융위원회가 집값 문제 때문에 가계대출 중단이란 초강수를 둔 것에 한은이 보조를 맞췄다는 해석이 나온다.이르면 10월 추가 인상한은은 추가 인상을 강력 시사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여전히 금리 수준은 완화적”이라며 “실질 기준금리는 여전히 큰 폭의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질 기준금리는 가계·기업이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금리 수준으로 명목 기준금리(연 0.75%)에서 향후 1년 동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나타내는 기대 인플레이션율(8월 2.4%)을 뺀 수치다. 이달 실질금리가 연 -1.65%로 낮은 만큼 추가 인상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이 총재는 “추가 금리 인상 시점은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정책 변화 등을 봐야 한다”며 “서둘러서도 지체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연내 인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8월 인상에 나섰고 앞으로 시간이 남은 만큼 연내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며 “경기와 가계부채 여건을 볼 때 내년 1분기에도 인상해 연 1.25%까지 높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석길 JP모간 본부장은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이 일단락되는 상황에 근접한 만큼 연내 기준금리를 한 차례 추가로 인상할 것”이라고 봤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