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총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부의 대출 규제가 실수요자와 무주택 서민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초저금리 영향으로 주가와 주택 가격이 급등했지만 이 같은 과실은 일부 계층에 집중된 반면 별다른 자산이 없는 무주택 서민은 대출 규제 탓에 지난 1년간 폭등한 전셋값조차 감당하지 못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출 총량규제에서 실수요 전세자금대출을 제외하는 등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전세자금대출도 주택담보대출과 마찬가지로 가계대출 총량규제를 적용받아 은행들은 정부가 설정한 연간 목표치를 준수해야 한다. 최근 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이 목표치를 초과하거나 근접하면서 신규 전세대출을 한시 중단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면 집값이 안정될 것이란 정부 말을 믿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매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무주택 서민이 최대 피해자가 됐다”며 “정부가 전세대출까지 틀어막은 탓에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가을 이사철에 길거리로 내쫓길 판”이라고 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넷째주(2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0.16% 올라 임대차 3법 시행 직후인 지난해 8월 첫째주(0.17%) 후 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한다는 당국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이면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실수요자와 무주택 서민의 희생이 더 커질 것”이라며 총량규제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21년 2분기 가계신용’(잠정치)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가계신용(가계부채)은 1805조9000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800조원을 넘어섰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